반도체 장비 산업은 기술 기대가 주가에 먼저 반영되고, 실제 실적은 수주를 거쳐 수년 뒤 따라오는 구조다. 주성엔지니어링(036930) 역시 이 '시차'의 한복판에 서 있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13억원으로 전년 대비 68% 급감했고, 올 1분기에는 적자로 돌아섰다. 반면 주가는 연초 대비 4배 이상 오르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배 가까운 1200억원 안팎을 기록하며 2022년의 '슈퍼 사이클'을 재현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발주 감소·R&D 비용 증가 영향에 실적 부진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 3107억원, 영업이익 31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각각 24%, 68% 감소한 수준이다. 올 1분기에도 부진은 이어졌다. 매출은 54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4.6%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339억원에서 영업손실 7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배경에는 고객사 투자 방식의 변화가 있다. SK하이닉스(000660)는 M15X HBM 전용 팹 초기 투자에서 신규 장비 발주 대신, 수율 안정성과 위험 최소화를 위해 기존 검증 장비를 이전·개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중국 등 중화권 고객사 역시 신규 투자보다 개조 중심으로 움직이며 같은 영향을 줬다.
여기에 연구개발(R&D) 비용 증가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R&D 비용은 1069억원으로 전년 대비 13.5% 증가했고, 매출 대비 비중은 34.4%까지 높아졌다.
이러한 부진에도 불구하고 연초 3만원대 초반이던 주가는 지난달 24일 장중 13만8900원까지 오르며 최고가를 기록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24일까지 2주간 외국인 순매수 1위(1538억8000만원), 기관 순매수 2위(583억5000만원) 종목에 올랐다.
증권가는 올해 영업이익이 최대 4배까지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나증권은 매출 4500억원, 영업이익 1213억원을, SK증권은 매출 4850억원, 영업이익 1160억원을 제시했다. 이는 회사 창사 이래 최고 영업이익이었던 2022년 1239억원과 유사한 수준이다.
◇수주 회복 기대 속 태양광 확장 모색
이 같은 낙관론은 수주 사이클 회복 기대에 기반한다. SK하이닉스의 설비투자 규모가 올해 30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다. 특히 투자 성격이 신규 장비 발주 중심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기에 중국 CXMT의 신규 팹 투자 재개 움직임도 수주 회복 기대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수요 확대 기대는 기술 경쟁력과 맞물린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주력은 원자층증착(ALD) 장비로, 회사는 2024년 기준 글로벌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는 885억원이다.
더욱이 공정 미세화가 심화되면서 ALD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요 메모리 공정에서 기존 화학적기상증착(CVD) 대비 ALD 비중이 8대 2 수준까지 역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상위 기술인 원자층성장(ALG)도 개발했으며, 반도체를 넘어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분야로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 사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차세대 태양전지로 꼽히는 페로브스카이트와 이종접합(HJT) 기술을 중심으로 증착 장비 적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이후 태양광 사업이 본격적인 실적 구간에 진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하반기 1기가와트(GW) 이상 규모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광용 증착 장비 수주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평가 우려도…고객 집중·업황 변동성 변수
다만 신중론도 제기된다. 주요 호재들이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되면서 고평가 구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BNK투자증권은 지난달 27일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보유'로 하향 조정했다.
불확실성도 적지 않다. 우선 고객 집중 리스크가 있다. SK하이닉스 의존도가 높아 투자 방식 변화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도 관건이다. 2022년 1239억원이던 영업이익이 2023년 289억원으로 급감한 전례에서 보듯, AI 투자 둔화나 공급 과잉 시 유사한 충격이 재현될 수 있다.
글로벌 장비업체들의 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경쟁 환경도 녹록치 않다. 주성엔지니어링의 비메모리 및 화합물 반도체는 아직 검증된 양산 실적이 제한적이다. 태양광·디스플레이 사업 역시 안정적 수익원으로 자리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 측은 북미·대만·중국 등에서 고객 기반 확대를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신규 매출은 2028년 이후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태양광 사업에 대해서는 "내년 이후 차세대 기술 중심으로 수요 확대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