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순방 경제사절단 일정 중 한 장면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인도 비즈니스 포럼' 한편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총수와 AI 기반 금융 스타트업 대표가 마주 서 짧은 인사를 나눈 것인데요. 주인공은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과 이철원 어피닛 대표입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로, 이날 고등학교 졸업 이후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정 회장은 인도에서 전기차와 모빌리티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고, 이 대표는 현지 중산층을 겨냥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고(故) 정주영 창업주의 손자로, 국내 재계 3위인 현대차그룹을 이끄는 오너 경영인이죠. 이 대표는 삼성과 SK 계열사에서 근무한 후 인도 모바일 금융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 2014년 어피닛을 창업한 경영인입니다. 이후 사업을 빠르게 키우며 지난해 인도 시장에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두 경영인의 만남은 단순한 개인적 인연을 넘어,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 방식 변화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사실 두 경영인이 인도에서 만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전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이 대기업 중심의 '1차 진출'에 머물렀고, 이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까지 참여하는 '2차 진출'을 본격화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정부는 이를 "중소기업이 이끄는 제2의 코리안 웨이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는 20일 인도 중소기업부와 중소기업 분야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한·인도 중소기업 협력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술 협력과 시장 진출 지원을 체계화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인도는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향후 높은 성장 잠재력을 가진 시장입니다. 전문가들은 향후 3~5년이 국내 기술 기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현지에 안착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내 중소기업의 대(對)인도 수출액은 32억5000만달러(약 4조7934억원)입니다. 중국(189억달러), 미국(182억8000만달러), 베트남(108억3000만달러) 등 주요 수출국과 비교해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입니다. 향후 국내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인도 시장 공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고, 이를 뒷받침할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도 필요합니다.
현재 중소기업 수출은 반도체 부품, 자동차 부품, 강판, 합성수지 등 제조업 중심입니다. 삼성, LG, 현대차, 포스코 등 대기업과 함께 공급망에 편입되는 '간접 수출' 구조가 대부분이고요.
전문가들은 우선 이 같은 기존 강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번 한국·인도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조선, 금융, AI, 방산 등 양국 전략 산업에서 중소기업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합니다.
식품과 뷰티 등 소비재 분야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합니다. 제조업과 달리 자체 브랜드로 직접 생산·판매가 가능해 비교적 현지 시장 공략이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K팝과 드라마 등 한류 콘텐츠를 연결해 브랜드 인지도 확보에도 유리합니다.
다만 인도 시장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습니다. 주별로 법과 문화, 비즈니스 환경이 달라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인도 전문가인 맹현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은 "중소기업 개별적으로 인도 시장 진출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현지 비즈니스 관련 정보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장난감, 의류 등 인도 정부가 보호하는 산업은 피하는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지 지원 체계의 고도화도 과제로 꼽힙니다. 현재 뉴델리에는 중기부 산하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운영되고 있지만, 인력과 지원 기능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 인력 확충과 함께 현지 맞춤형 지원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번 정상외교를 계기로 추진되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인도 진출 지원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중국, 미국, 베트남, 일본에 이어 인도가 한국 중소기업의 핵심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결국 정책의 지속성과 실행력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