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이 걸려 개발한 롤러 퍼프를 협력 제조사에서 유사하게 제조해 판매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노력한 시간이 물거품이 된 느낌이었죠."

좌측은 율세븐의 롤러퍼프 제품. 우측은 협력 제조사 선두퍼프에서 판매 중인 제품. /각사 홈페이지 캡처.

화장도구를 제작해 판매하는 율세븐의 조하린 대표는 11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율세븐은 자체 제작 제품 '롤러 퍼프' 기술을 두고 협력 제조사였던 선두퍼프와 2년 넘게 기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율세븐은 롤러 퍼프에 대한 국내 디자인 등록 및 실용신안 출원, 미국 디자인 특허 출원 등을 보유하고 있다.

율세븐은 지난 2023년 8월, 선두퍼프가 유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후 네이버와 쿠팡에 판매 중단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선두퍼프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또, 율세븐이 보유한 디자인 특허를 무효화하겠다며 특허심판을 걸어왔다.

율세븐은 소송 1년 만인 2024년 11월, 특허심판 1심에서 승소했다. 조 대표는 "특허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다"고 밝혔다. 긴 시간 동안 소송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율세븐은 자사 제품이 입소문을 탈 때, 협력 제조사와의 분쟁으로 재고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판매 기회를 놓쳤다.

현재 율세븐은 선두퍼프와 특허심판 2심을 진행하고 있다. 손해배상 소송은 투입 시간과 비용 대비 실효성이 낮을 것으로 판단해 진행하고 있지 않다. 조선비즈는 선두퍼프 측 입장을 듣고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사이에서도 기술 침해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반려동물용품·헬스케어 벤처기업인 베르그앤릿지는 지난해 11월 사업 협업 논의 도중 교원그룹의 부동산개발 자회사 교원프라퍼티에게 기술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했다. 교원프라퍼티가 반려동물 호텔 '키녹' 개장에 앞서 베르그앤릿지의 사내 노하우를 취했다는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교원프라퍼티의 베르그앤릿지 기술 침해 여부를 조사하고 나섰다.

지난 2022년에는 한인 민박 전문 플랫폼 '민다'가 마이리얼트립 소속 직원이 약 3개월간 민다 플랫폼에서 한인 민박을 허위 예약한 후, 예약이 확정되어야만 열람이 가능한 한인 민박 호스트의 이메일, 전화번호, 소셜미디어(SNS) 등을 취득했다며 소송에 나섰다. 다만 법원은 마이리얼트립 직원의 행위가 업무 방해는 해당하지만, 데이터 탈취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픽=손민균

◇기술 탈취 피해 中企 ↑…"기술 보호 역량 취약"

이처럼 기술 탈취로 피해를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2024년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의 연간 기술침해 건수는 약 299건에 달한다. 기술이나 경영상의 정보 침해로 인한 평균 손실액은 18억2000만원, 총 손실액은 5442억600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소기업들의 기술 보호 역량이 취약한 탓이다. 중기부 조사에서 중소기업의 기술보호 역량 점수는 49점으로, 대기업(74.5점)의 66% 수준에 그쳤다. 전담 인력이 부족하고, 비밀유지계약(NDA) 체결 비율도 낮았다. 이로 인해 내부 직원 또는 전직 직원, 제3자에 의해 기술 유출이 빈번히 일어났다.

문제는 기술 탈취를 인지하더라도 실제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술 침해를 입증하려면 관련 자료가 필요한데, 대부분 가해 기업이 쥐고 있어 증거 확보가 어렵다. 또, 소송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중소기업 입장에선 소송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설령 승소하더라도 기업이 받는 타격이 크다. 손해배상액이 기대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중기부에 따르면 원고의 평균 청구액은 8억원이지만, 실제 인용 금액은 1억5000만원 안팎에 그친다.

◇전문가 "사전 예방 중요…정보 교육과 주기적 점검해야"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막기 위해선 '사전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의 역량을 고려할 때, 기술 탈취가 발생한 이후 기술 분쟁을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중기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5월까지 중기부의 기술 분쟁 조정·중재 절차를 종료한 중소기업은 모두 233곳이다. 그런데 이들 중 6분의 1인 40곳은 경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휴업 또는 폐업했다.

재단법인 경청의 박희경 변호사는 "중소기업의 기술 분쟁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서는 기술임치제도 등을 활용해 증거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관련 지원책이 있음에도 홍보가 부족해 현장에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정부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늘리고,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기술을 관리한다면 현재 제도의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