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하이브(352820) 산하 소속사 어도어가 뉴진스(새 활동명 NJZ)를 상대로 제기한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심리(심문)가 종결된다.

이를 앞두고 12일 뉴진스 팬덤인 팀 버니즈는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 힘을 보태고 나섰다. 팀 버니즈는 “신뢰 관계가 파탄 난 적대적 환경에서 전속 활동을 강제당한다면, 멤버들의 고통을 연장하는 것이고, 팬들도 멤버들의 음악과 연예 활동을 즐거운 마음으로 즐길 수 없을 것”이라며 재판부가 어도어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해달라고 촉구했다.

어도어는 올해 1월 서울중앙지법에 뉴진스 멤버를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했다. 지난해 12월 제기한 ‘전속계약유효확인의소’의 1심 판결 선고 시까지 어도어가 전속계약에 따른 기획사 지위를 인정받고, 어도어의 승인이나 동의 없이 뉴진스 멤버들이 독자적으로 광고 촬영을 비롯한 모든 연예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것이다.

지난 7일 뉴진스(왼쪽부터 하니, 민지, 혜인, 해린, 다니엘)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어도어가 신청한 가처분 구술 변론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고 있다. /뉴스1
지난 7일 뉴진스(왼쪽부터 하니, 민지, 혜인, 해린, 다니엘)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어도어가 신청한 가처분 구술 변론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고 있다. /뉴스1
하이브 산하 레이블(소속사)의 여자 아이돌들. 위부터 어도어 뉴진스, 쏘스뮤직 르세라핌, 빌리프랩 아일릿. /그래픽=정서희
하이브 산하 레이블(소속사)의 여자 아이돌들. 위부터 어도어 뉴진스, 쏘스뮤직 르세라핌, 빌리프랩 아일릿. /그래픽=정서희

가처분이 인용될지, 기각될지 향방은 뉴진스 측이 어도어의 전속계약 위반과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신뢰 파탄에 이른 증거를 명확하게 제시해 재판부를 설득했는가에 달려있을 전망이다.

조선비즈는 지난 7일 뉴진스가 제출한 가처분 구술변론자료를 중심으로 핵심 주장과 근거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①르세라핌 밀어주고, 아일릿 키우고… 뉴진스는?

뉴진스는 어도어 측이 자신들을 차별, 비하, 공격했다고 주장한다. 하이브가 민희진을 최고브랜드책임자(CBO)로 영입한 뒤 하이브의 첫 번째 걸 그룹을 디렉팅(프로듀싱)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론 산하 소속사인 쏘스뮤직을 통해 ‘르세라핌’을 먼저 데뷔시켰다고 했다.

나아가 2023년 위클리(주간) 음악산업 리포트를 통해 ‘뉴(뉴진스) 버리고 새로 판을 짜면 될 일”이라고 한 점을 내세웠다.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이 하이브를 통해 민희진이 작성한 기획안을 확보, 자신들의 콘셉트를 모방·표절해 ‘아일릿’을 대체재로 내세운 점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13일 발송한 ‘전속계약 위반사항 시정요구’ 내용증명에서, 음악산업 리포트에 적시된 “‘뉴아르’란 하이브 산하 레이블에서 데뷔한 여성 아이돌 그룹인 ‘뉴진스, 아일릿, 르세라핌’을 일컫는다. 뉴아르 워딩으로 며칠을 시달렸는데, 뉴 버리고 새로 판을 짜면 될 일”이라는 문구를 두고, 하이브가 뉴진스를 버리라고 결정했다고 주장하면서 차별과 배척의 근거로 삼았던 것은 이번 구술 변론에선 삭제됐다. 리포트 작성 시기가 아일릿 데뷔 전인 2023년 5월 10일이라는 점, 당시 언론이 뉴진스와 아이브, 르세라핌을 묶어 ‘뉴아르’라고 보도했던 점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된다.

대신 리포트에 실린 “‘블랙핑크-르세라핌-에스파-아이브’를 묶으면서 아예 카테고라이징(분류)을 달리 가져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내놓으며, 이른바 ‘새 판’에서도 르세라핌은 끼우고, 뉴진스를 배제하려 한다고 했다.

'하니 무시해' 사건 관련 뉴진스 법률대리인인 세종 측의 구술변론자료 53페이지 캡처. 아일릿 일부 멤버가 말과 행동으로 하니를 조롱했다는 내용이 새롭게 들어갔다.
어도어가 7일 공개한 영상의 캡처본을 조선비즈가 재구성한 것. 아일릿 멤버들이 복도에서 뉴진스 멤버들을 발견하자 90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며 지나가고 있다.

‘하니 무시해’ 사건도 거론했다. 2024년 5월 27일 빌리프랩 매니저가 뉴진스 멤버인 하니 앞에서 아일릿 멤버들에게 ‘무시하고 지나가’라는 취지의 말을 했고, 이에 아일릿 멤버 3명이 인사하지 않고 지나갔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니가 민희진과 나눈 카카오톡 대화가 증거였고, 인사하지 않는 영상이 삭제됐다는 점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다만 하이브 측은 폐쇄회로(CC)TV를 삭제한 일이 없으며, 실제 아일릿 멤버 3명이 하니와 다니엘에게 인사하는 영상을 재판장에서 공개하기도 해 진실 공방이 벌어진 상태다.

뉴진스 측은 아일릿 일부 멤버가 말과 행동으로 하니를 조롱했다는 내용도 새롭게 적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증거를 내놓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조롱을 당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② ‘뉴진스 성공 주역’ 민희진 몰아낸 뒤 수납行?

어도어가 뉴진스 연예활동의 기반이자 전례 없는 성공을 올리는 데 기여한 민희진을 일방적으로 축출했으며, 이는 그 자체로 중대한 매니지먼트 의무 위반이라고도 강조했다. 2024년 5월 31일 어도어 이사를 하이브 임원들로 변경해 민희진을 고립시킨 데 이어 그해 8월 27일 대표이사까지 해임해 결국 퇴사(2024년 11월 20일)에 이르게 했다는 주장이다.

뉴진스와 부모가 민희진 대표 체제 및 전속 프로듀서 지위 보장을 줄곧 요구했으나 이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외의 대안도 마련해 두지 않아 1년 6개월간 사실상 수납(활동 중단)하려 했다고도 했다. 하이브 측이 그래미상을 받은 프로듀서 섭외에 소요되는 시간을 말한 것을 수납장에 물건을 넣어두는 것처럼 아티스트를 묵힌다는 취지로 해석한 것이다.

증거로 제시한 언론 기사에는 “데뷔 3년도 되지 않아 쉴 시간 없이 꾸준히 활동해야 하는 걸 그룹에게 ‘군백기(군입대 공백기)’ 수준의 휴식을 강제로 주려는 게 하이브의 배임이 아니면 뭐냐”는 취지의 주식 커뮤니티 주주 반응이 실렸다.

세종은 또 하이브가 뉴진스를 1년 6개월간 수납하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뉴진스 측 구술변론자료 캡처

뉴진스 측은 새로운 프로듀서와 합을 맞추는 데 얼마나 더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 없으며,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데뷔 4년 차인 뉴진스가 불필요한 시간을 끌다가는 필연적으로 연예계에서 도태된다고도 호소했다.

③ 뉴진스 성과 파괴→신뢰도 파탄

어도어가 뉴진스의 인기 뮤직비디오를 다수 제작한 돌고래유괴단과 갈등을 일으킨 점도 의도적인 뉴진스 성과 파괴 행위라고 지적했다. 돌고래유괴단이 자사 유튜브 채널에 뉴진스 팬 서비스 차원에서 ‘ETA’ 디렉터스컷을 공개했던 것을 어도어 요구에 따라 삭제한 사건이다. 뉴진스의 ‘ETA’ 뮤직비디오는 애플의 아이폰14 프로로 촬영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뉴진스는 민희진 해임 직후 어도어가 성과물을 삭제하고, 우호적 관계에 있던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대표와의 신뢰 관계를 파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콘텐츠 게시는 사전 합의가 돼 있었으나, 대표 변경 후 저작권 침해를 들어 과격한 태도를 취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어도어는 돌고래유괴단이 뮤직비디오를 무단 게재해 이에 대한 ‘서면 동의’가 필요하다고 이의제기를 한 것이며, 광고주(애플) 역시 이에 반발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뉴진스는 하이브가 일본 성과 등을 폄훼하고, 컴백 5일 전 ‘가스라이팅’ ‘배신돌’ ‘뉴프티(뉴진스+피프티피프티)’ 등 대대적으로 언론 플레이했다는 점도 더 이상 소속사로 계약을 이어가기 어려운 신뢰 파괴의 증거로 제시했다.

가처분 결정은 판결과 달리 별도 선고기일이 없다. 다만 본 판결 전까지 임시적(잠정적) 지위를 결정하는 가처분 취지를 고려할 때 심리 종결 일주일 뒤인 21일 전후, 늦어도 이달 중에는 결정이 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뉴진스는 오는 23일 신곡 발표를 예고한 바 있다. 새 활동명인 NJZ로서의 데뷔곡이다. 법원이 어도어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할 경우 뉴진스 멤버의 이런 계획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기각할 경우엔 예정대로 홍콩 무대에서 신곡을 발표할 수 있지만, 4월 3일 본격적인 계약 유효 소송이 예정돼 있는 만큼 법적 공방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처분을 포함한 본 소송 결과는 소속사와 아티스트 간 계약 관계 재정립 등 K팝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어서 업계는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