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770만 소상공인, 중소·벤처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3년 넘게 일상을 뒤흔든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벗어나니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계엄까지 터지면서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1450원대로 치솟고 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지금 같은 환율 변동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또 다른 족쇄가 되고 있다. 조선비즈는 위기의 소상공인, 중소·벤처기업의 현실을 들여다보고,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그 돌파구를 찾아본다. [편집자 주]


☞ [위기의 중기벤처] 글 싣는 순서
①‘키코 트라우마’ 아직인데…환율 리스크, 中企부터 덮친다
②지갑 닫고, 늙어가는 韓… “내수 부진, 출구가 안 보여요”
③전문가 좌담 “환율 1400원 뉴노멀, AI 슈퍼 사이클 올라타야”

브라질·베트남에서 원두를 수입하는 A 기업은 최근 고환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커피를 수출하면 어느 정도 손실을 상쇄할 수 있지만, 내수 판매에 100%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A 대표는 “영업이익률이 5% 정도인데, 환율이 10~20% 올라버리니 채산성이 악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출 기업이라고 상황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경북 칠곡군에 있는 제조업체 B사는 환율이 오르자 해외 바이어가 단가 인하를 요구하며 계약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 기업의 원화 기준 수익이 증가하는 만큼 더 낮은 가격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다며 계약 조건을 조정하려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최근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향하며 상승(원화 가치 하락)하면서 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초에만 해도 1310원대였으나 12월 1400원대로 급등하는 등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1450원대를 돌파한 상태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대를 넘어선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세 번째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하 속도를 늦추겠다는 기조인 데다 국내에서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정치적 불안이 더해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중소기업은 재료를 수입해다가 이를 소비자용(B2C)으로 팔거나 중간재를 가공해서 대기업에 납품하는 경우가 많다. 수입 비용이 늘어나는 부담(환차손)을 수출 환차익을 통해 상쇄할 수 있는 대기업과 달리 자연스런 환 헤지(환 위험 회피)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측면에서 환 리스크(환차손익)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25% 수준에 달한다. 기업의 매출과 수출 규모가 클수록 비중이 더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할 때마다 환차손은 약 0.36% 증가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기업으로선 환율 상승으로 보유 현금이 줄어들게 된다. 대기업과 달리 유보금이 없는 중소기업은 인건비, 재료비 등의 투자를 아껴야 하고 이는 제품 경쟁력 하락으로 연결되는 등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다.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환 헤지가 필수적이지만 중소기업은 2곳 중 1곳은 무방비 상태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중소기업중앙회). 환리스크를 관리하더라도 선물이나 보험 등에 가입하는 환 헤지 전략보다는 단가 조정, 원가 절감, 수입처 다변화를 모색하는 등 간접적 대응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작업자가 일하고 있다. /장우정 기자

환 헤지 상품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는 지난 2008년 중소기업계를 휘청하게 만들었던 키코(KIKO) 사태 트라우마가 꼽힌다.

키코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은행들이 수출 중소기업에 집중 판매한 파생상품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치솟으면서 919개의 기업이, 3조원에 웃도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많은 기업이 파산하거나 매각됐으며, 일부 기업은 여전히 은행을 상대로 법적 대응 중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5년 업무보고에서 환율 상승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의 긴급 경영자금으로 약 1조5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환 보험 가입비도 지원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는 회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일시적으로 진화하는 용도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섭 중기부 차관도 “이미 환율이 많이 오른 상태여서 장기적으로 계속 오를 것인지, 내릴 것인지 판단이 혼재돼 있다”며 “얼마나 많은 중소기업이 보험 등에 가입해 환리스크에 대비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환율의 향방을 알기 어려운 상태에서 현재 중소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원자재 수입 계약을 단기로 돌리는 것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현재는 외상으로 물건을 받아다가 3~6개월 뒤 결제를 해주는 방식을 많이 쓰는데, 이를 더 단축시킨다는 것이다. 한 경기 소재 중소기업 관계자는 “결제일을 짧게 짧게 가는 것도 현금이 있어야 가능한 시나리오”라면서 “환율 대응에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환율의 예측 가능성’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환율 전망이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상대국이 약정 금액 내에서 외화를 즉각 맞교환해 주는) 한·미 통화스와프가 환율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