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로 한국 스타트업의 피해가 극심해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든 뭐든 정치적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돼야 합니다.”

‘벤처업계 대부’로 꼽히는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4′에서 기자와 만나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고 회장은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의 불안정한 상황으로 인해 투자를 철회하거나 보류하고 있다”면서 “5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앞두고 있던 한 스타트업의 경우,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방문을 취소하고 투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현재 투자 유치 중이라고 밝힌 한 스타트업 대표도 “투자는커녕 이를 위한 기업설명(IR) 기회를 얻는 것조차 어려워졌다”면서 “내년쯤 스타트업 투자가 재개되는 분위기였는데, 다시 시계제로 상태에 놓이게 됐다”고 토로했다.

사진 오른쪽부터 11일 '컴업 2024' 현장에서 만난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장우정 기자

환율 급등과 국내 증시 붕괴 등 이른바 이번 사태를 통해 촉발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스타트업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는 “환율 방어를 위해 약 100조 원의 자금이 소요됐다”며 “이는 오픈AI와 같은 혁신 기업을 5개 정도 만들 수 있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한상우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은 “정부 지원 해외 센터에 입주한 기업 등 해외에 막 진출하거나 준비하던 스타트업의 경우 환율 상승으로 인해 비용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기업의 경우 증시 불안으로 상장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출구가 막히면 새로운 투자 유입도 어려워진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체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스타트업의 혁신 동력은 떨어지는 분위기다. 의료계 총파업 장기화로 인한 의료·바이오 스타트업계 동반 침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주요 인재의 해외 유출 등이 대표적이다.

김 대표는 “카이스트 박사 등 고급 인재들이 대거 미국으로 떠나고 있다”며 “지난해 말 기준 분기별 창업 건수 추이를 보면, 2021년과 비교해 10분의 1에 그치고 있다. 계엄 사태로 인해 이런 분위기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듯) 탄핵이 결정되고, 이후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한국에 대한 신뢰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며 “민주적 처리 과정을 보며, 한국의 능력이 더 돋보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스타트업을 성장동력 삼아 전 세계 경제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식 모델을 따라야 한다”면서 “스타트업을 키워내고, 이들이 유니콘(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에 등극하는 것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