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과거 제조업에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가 중요했다. 그러나 생산 플랫폼이 이미 잘 구축된 현재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창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성장, 해외 진출 해법이다.”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최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제조업의 새로운 주역으로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강조했다.

모 교수는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제품 기획, 플랫폼을 활용한 생산과 유통,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특징으로 한다”며 최근 전 세계를 누비고 있는 국내 화장품 중소기업들을 예로 들었다.

모 교수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 화장품 기업이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기업과 협력해 제품을 생산하고, 소셜미디어(SNS) 등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마케팅에 나서며 세계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모 교수는 각 지역만이 생산할 수 있는 창조적인 콘텐츠인 ‘로컬 브랜드’의 활성화를 역설해왔다. 이를 통해 상권, 지역이 성장하고 나아가 도시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배경이다.

모 교수는 여기에 크리에이터 브랜드와의 융합을 추가했다. 온라인, 오프라인(상권), 도시(생활권) 등 3대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크리에이터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최근 출간한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에 담긴 핵심 메시지다. 다음은 모 교수와의 일문일답.

―제조업에 창의적인 콘텐츠를 입힌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강조한다.

“과거 제조업은 생산 설비를 가진 자가 주도권을 쥐었다. 하지만 이제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DM(제조업자 개발 생산) 등 생산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창의성과 기획력을 가진 자가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가 됐다.

최근 화장품 업계 성공 사례를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욱 분명해진다. 올해 상반기 중소 화장품 기업들의 수출 비중이 68.8%에 달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창의적인 제품 기획과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한 마케팅이다. 대규모 설비투자 대신 OEM 기업과 협력해 제품을 생산하고,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했다.

이러한 사업 모델은 전통적인 중소기업이나 인디 브랜드라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들은 단순히 규모가 작은 기업이 아니라, 창의성과 기획력으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다. 마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크리에이터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콘텐츠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중소 화장품 기업들이 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SNS 등을 활용한 마케팅을 펼치며 전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뉴스1

―이 기업들의 성공 방식이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닮았다.

“그렇다. 크리에이터들이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듯, 이들은 제조 생산 플랫폼을 통해 제품을 만들고 유통한다. 크리에이터들이 팬과 소통하며 콘텐츠를 발전시키듯 이들도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제품을 개선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크리에이터 브랜드’라고 정의했다.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말 그대로 창의적 기획력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다.”

모종린 교수는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화장품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패션 산업에서도 젊은 디자이너들이 SNS를 통해 브랜드를 홍보하고, ODM 업체와 협력해 제품을 생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식품 스타트업도 레시피 개발에 주력하고 생산은 OEM 업체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생산 플랫폼의 발달로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더 많은 창의적 기업가들이 시장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며 “이는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고 했다.

무신사는 지난 9월 서울 성수동 일대에서 '무신사 뷰티 페스타'를 열었다. 모종린 교수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시작해 오프라인 문화 공간으로 확장에 나선 무신사의 성장 스토리를 강조했다. /뉴스1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며 그동안 그 지역만의 창조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로컬 브랜드’ 활성화를 역설했다.

“골목 상권은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도시의 핵심 인프라다. 경제적으로는 중소 사업자들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며, 사회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공간이 된다. 문화적으로는 지역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거점이다.

이러한 골목 상권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로컬 브랜드는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지역의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콘텐츠화해 독자적인 브랜드 가치를 창출한다. 서울, 제주 등 한국 도시의 글로벌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도시 콘텐츠도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브랜딩 자원이 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제주의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오설록’은 차(茶) 문화와 지역의 자연주의를 연결하고, 홍대의 ‘젠틀몬스터’는 단순한 아이웨어 브랜드가 아니라 감각적인 전시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성수동의 ‘무신사’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로 시작해 오프라인 문화 공간을 확장하고 있고, 대전의 ‘성심당’은 지역 베이커리로서 독자적인 브랜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최근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란 책을 냈다. ‘로컬’과 ‘크리에이터’ 브랜드의 융합을 강조했다.

“크리에이터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크리에이터 경제가 단순한 경제 현상을 넘어 새로운 사회 구조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미래에는 모든 개인이 크리에이터가 될 것이다.

또한 크리에이터 경제는 온라인, 오프라인(상권), 도시(생활권)라는 3대 축의 유기적 결합이 중요하다. 온라인은 콘텐츠 제작과 고객과의 소통이 이뤄지는 플랫폼이다. SNS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브랜드 스토리를 전파하고 팬들과 상호작용한다. 오프라인 상권은 실제 브랜드 경험이 이뤄지는 물리적 공간이다. 매장이나 팝업스토어를 통해 온라인에서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를 현실에서 구현한다.

도시는 이러한 활동들이 집적돼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생태계다. 성수동이나 홍대처럼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세 축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크리에이터 브랜드는 최대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크리에이터 경제를 더욱 활성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AI가 콘텐츠 편집, 기초 디자인, 고객 응대 같은 반복적인 작업을 자동화함으로써, 개인이나 기업은 브랜드 기획이나 제품 개발 등 본질적인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다. 또한 AI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져 사업의 범위가 확장될 것이다.

또한 AI가 디지털 콘텐츠 생산을 일부 대체하는 상황에서 AI가 접근하지 못하는 오프라인 및 도시 기반 콘텐츠는 고유성과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온라인 기반 비즈니스로 성장한 기업이 이후 오프라인 경험을 강화하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