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이오·헬스·제약 분야 스타트업들이 스위스 바젤로 향하고 있다.

전 세계 생명과학 기업들이 들어선 초대형 바이오 클러스터를 형성한 바젤에 진출, 이 기업들과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혁 혁신)을 하기 위한 차원이다. 로슈·노바티스·론자 등 대형 다국적 제약회사를 비롯해 약 700여 개의 제약·바이오 기업의 본사가 바젤에 있다.

또한 스위스 북서부에 위치한 바젤은 독일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유럽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인구 7억명의 유럽 국가 전체를 비행기로 1~2시간 내에 접근할 수 있는 지리적 장점이 있다. 바젤이 ‘유럽 제약시장의 관문’이라고 불리는 배경이다.

◇다국적 제약사와 오픈이노베이션…바젤, 바이오 벤처 전초기지로

'스위스 바젤 이노베이션 파크'의 메인 캠퍼스. /스위스 이노베이션 제공

24일 벤처업계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바젤 진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면역질환 전문 유효성 평가 플랫폼인 프리클리나는 올해 초 바젤 지역 내 스위스 이노베이션 파크에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제약회사 및 바이오 기업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강영모 프리클리나 대표는 “바젤은 프랑스, 독일, 스위스가 접경하는 트라이앵글 지역에 있는 도시로, 로슈·노바티스·론자 등 세계적인 제약회사 및 CMO 회사가 있는 유럽 바이오의 허브”라며 “유럽 최고의 생명과학 클러스터 심장부에 위치한 지리적 산업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현지 시장 개척에 본격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파티앱젠도 올해 초 노바티스 캠퍼스 내 스위스 이노베이션 파크에 자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노바티스 출신의 알렉상드르 조예 박사를 현지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사장으로 영입했다. 파티앱젠은 면역, 알레르기 질환 치료를 위한 전임상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항체 기반 플랫폼 기업이다.

유전체 분석 기업 마크로젠은 올해 2월 바젤에 지놈 슈퍼센터를 설립했다. 마크로젠은 유럽 시장 내 주류에 침투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 마크로젠은 200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 자회사를 설립했고, 이후 3000곳 이상의 유럽, 아프리카 리서치 고객에게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이번에 노바티스 캠퍼스 내 바젤 이노베이션 파크에 입주함으로써 글로벌 제약사들과의 접점을 확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제약 컨설팅 기업 바이오북 홍순재 대표는 “바이오 헬스케어 업종은 해외 진출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주요 시장인 미국과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으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시장을 동시에 커버할 수 있는 스위스 바젤이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R&D 법인세 11% ‘세제 혜택’…의약품 허가 신청도 수월

국내 벤처기업들의 스위스 진출이 더욱 활발해진 배경에는 세제 혜택과 한국과 바젤간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상호인정 협정이 있다.

바젤의 법인세는 13% 수준이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 등록 시 추가로 세금을 감면해 준다. 바젤 내에서 연구개발(R&D)을 할 경우 법인세가 약 11%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는 구조다. 이 같은 조세 지원으로 바젤 지역에서 이뤄진 특허출원 건수는 유럽 내 최고 수준인 인구 10만명당 505건(2022년 기준)에 달한다.

GMP 상호인정 협정을 통해 GMP 실사 없이 적합증명서 제출만으로도 양국 간 의약품 허가 신청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보건복지부와 스위스 교육연구혁신사무국(SERI)이 공동 주최한 ‘한-스위스 생명과학 이니셔티브’ 행사가 10월 31일 스위스 바젤 노바티스 캠퍼스에서 열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한국 정부와 스위스간 협력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와 스위스 교육연구혁신사무국(SERI)이 공동 주최한 ‘한-스위스 생명과학 이니셔티브’ 행사가 바젤 노바티스 캠퍼스에서 열렸다.

보건복지부와 스위스 대사관은 2014년 이후 매년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인공지능(AI)·신경과학 분야의 정밀 의료 전문가들이 참석해 양국의 연구개발 동향과 연구 경험을 공유했다.

서울시는 2022년부터 ‘서울-바젤 스타트업 허브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외 경쟁력을 가진 바이오 기업을 선발하고 매년 바젤대학교 이노베이션실에서 임상, 비임상 연구 협력을 지원하고 있다.

말라리아 등 전염병을 AI 디지털 기기로 진단하는 스타트업 노을은 스위스 바젤 투자청에서 주관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데이원(DayOne)에 참여해 수만달러의 시드(seed)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스위스열대공공보건연구소, 바젤대와 함께 AI 알고리즘을 고도화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최재혁 노을 스위스법인장은 “스위스 바젤 지역에서는 다양한 펀딩 시스템을 통해 자금조달이 가능하고 세계 최고기업과의 R&D 협력이 가능하다”며 “유럽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 바젤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