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제주시 조천읍 제주양조장. 제주에서 수확한 샤인머스캣으로 와인을 만들기 위한 시험 발효가 열흘째 한창이었다. 3399ℓ(리터) 발효조 뚜껑을 여니 쿰쿰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글보글 기포와 함께 포도 껍질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제주양조장 관계자는 “기술 이전을 받아 2021년부터 제주도에서도 본격적으로 포도 농사가 시작됐다”며 “포도알 크기가 다르거나 못생겨 판매하지 못한 제품을 사다가 약 14~15일간 발효를 거쳐 숙성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면서 “시험 생산을 통해 제조 방법을 확정·신고해 내년부턴 본격적으로 샤인머스캣 와인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2010년 설립된 제주양조장은 제주산 감귤을 원료로 와인 ‘1950 SEE YOU AT THE TOP’을 생산하는 곳이다. 브랜드는 ‘한라산 정상(1950m)에서 만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0년 한·중·일 정상회담의 공식 건배주, G-20 서울회의 만찬주로 선정됐었다. 조선비즈가 주최한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에서 ‘우리술-한국와인’ 분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주양조장은 1950 제주 감귤와인을 750mL, 미니어처(80mL) 두 가지 모델로 판매하고 있다. 750mL 기준 작년 4만병을 생산했다. 지난해부터 고급 감귤인 천혜향 와인을 새롭게 선보이기도 했다.
법무법인에서 파산 업무를 담당하던 박종명 제주양조장 대표(제주대 행정학과 겸임교수)는 감귤밭 매각 과정에서 버려지는 감귤을 활용해 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 길로 이미 감귤 와인을 만들어 특허를 갖고 있던 최영훈 농업진흥청 감귤연구소장(박사) 찾아 기술이전을 받았다.
박 대표는 “감귤 껍질을 깠을 때 들어있는 흰색 기름 성분이 발효를 어렵게 한다”며 “껍질째 발효하는 다른 과일과 달리 감귤은 껍질과 기름 성분을 제거해 알맹이만 착즙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와인으로 쓰는 감귤이나 천혜향은 농가에서 나오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물량을 받아다가 쓴다. 통째로 효모와 발효하기 때문에 주정에 감귤 착즙액을 섞는 방식으로 만드는 감귤 담금주와 차이가 있다.
제주양조장은 가격을 낮춰 지역사회를 넘어 더 많은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여력을 지금보다 10배 늘려 연간 40만병 수준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생산시설을 옮기는 공간 확보를 위해선 대략 14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하고 영세업체 입장에선 자력으로 투자할 수가 없어서 아직 발도 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감귤 농가가 생존하려면 수요처인 2차 가공업체 지원도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궁극적으론 제주도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전통주 육성에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내놨다. 그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17개 지방자치단체가 전통주 육성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전통주를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조례 자체가 없다 보니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인 지원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무형문화재 제11호의 고소리술, 오메기술, 오합주 등 제주를 대표하는 전통주와 허벅술, 감귤와인 1950, 미상, 녹고의 눈물, 맑은바당, 감귤주 등 제주에서 생산되는 감귤, 메밀, 좁쌀 등 농산물을 원료로 한 지역특산주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술생산자협동조합을 포함한 약 28개 양조장이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