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유통 분야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해 육성하고, 그들과 협력해 롯데의 혁신을 주도하겠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혁신 생태계를 이기지 못한다.”

지난 11일 서울 강남 삼성동 집무실에서 만난 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는 이같이 강조했다. 롯데벤처스는 2016년 롯데그룹이 설립한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이다.

롯데그룹 내 인재교육을 총괄하는 롯데인재개발원장 등을 역임한 전영민 대표는 지난 2020년 롯데벤처스 수장에 올랐다.

이후 그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롯데벤처스는)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룹 혁신을 함께 할 스타트업을 발굴하라“는 특명을 받았다.

전 대표는 “이제 대기업 홀로 혁신하기 어려운 시대”라며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그들과 협력해 혁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롯데벤처스가 지난 2022년 투자한 뷰티 테크기업 에이피알은 국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메디큐브’ 등을 판매하는 에이피알은 지난해 매출 5200억원, 영업이익 10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2월 코스피 시장에 상장했고, 시가총액은 2조1450억원에 달한다. 현재 미국, 중국, 일본, 대만 등 7개국에 진출했다.

전 대표는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에 빠진 일본이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 강화에 나선 것에 예의주시했다. 일본은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자금 규모를 2027년까지 10배 늘린다고 발표했다.

그는 “1990년대 자산 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중 8개가 일본 기업이었다“며 ”그러나 현재 일본 기업은 30위권에도 없다. 이는 일본의 대기업이 미국 등 해외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현재 순위권에 있는 기업을 보면 1990년대에 있던 기업이 아닌, 대부분 새롭게 창업한 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본이 30년 후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게 전 대표의 설명이다. 최근 일본이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 배경이다.

그는 “이제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발해질 것이고, 일본 경제도 성장할 전망“이라며 “한국이 이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느냐가 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 롯데그룹이 CVC를 설립한 지 약 8년 됐다. 투자철학은 무엇인가.

“신동빈 회장이 내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럴 거였다면 유명 벤처캐피털에 투자했다. 롯데그룹과 협력할 수 있는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그들의 성장을 지원하라. 그리고 롯데의 혁신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의 혁신 생태계를 이기지 못한다. 특히 새롭게 등장하는 기술 관련 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화이자와 같은 초거대 기업이 2010년 창업한 모더나와 협업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스타트업과 협업해 혁신하는 기업은 지속성장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사라질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대기업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기술을 확보하거나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는데.

“그렇다. 그러나 주로 성장한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형태였다.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그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난 이걸 ‘수렵사회’와 ‘농경사회’로 비교한다. 기존까지 대기업들은 다 자란 동물을 사냥하듯, 해외 성장한 기업을 거금을 들여 인수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판을 만들고 씨 뿌리고 일구는 농경 사회로 넘어가고 있다. 대기업들이 남이 키운 스타트업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직접 성장시키고 그 과정에서 협력하는 것이다. 롯데그룹에서 이 역할을 CVC인 롯데벤처스가 하고 있다.”

―롯데벤처스의 강점은.

“그룹 강점과 연결된다. 롯데가 오랜 경험을 통해 구축한 노하우와 브랜드, 인프라 등을 활용해 스타트업을 육성한다. 유통, 호텔, 식품, 석유화학 등 롯데가 영위하는 비즈니스와 연관된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는 배경이다.

이들은 롯데그룹 계열사와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그 기술을 현장에서 테스트하고, 실제로 사업을 하고 있다. 롯데마트에서 식품을 판매하고, 롯데그룹 계열사 공장에 스마트 설루션을 서비스하고,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로봇을 개발하는 등 다양하다. 롯데가 기본적인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 해외에 지사를 두고 있다. 스타트업 해외 진출을 어떤식으로 지원하나.

“롯데벤처스의 또다른 강점이다. 스타트업의 비즈니스를 국내에서 테스트하고 입증되면 바로 해외로 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미국과 중국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돼 있다. 현재 중국은 상황이 어렵다. 미국은 시장 규모가 커 스타트업이 한국에서 평가받는 가치보다 약 10배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롯데벤처스는 미국 실리콘밸리, 베트남 하노이에 지사를 두고 있다. 일본 도쿄에는 ‘일본 롯데 CVC’인 롯데벤처스 재팬과 협력하고 있다. 3개 국가에서 각각 현지 투자자, 비즈니스 파트너를 연결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현지에서 롯데가 운영하는 백화점, 마트 등과 연계해 현지 맞춤형 서포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I 분야 스타트업 투자는 어떤가.

“사람들은 AI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투자 기회는 AI 인프라를 만드는 기술 기업이 아니라, AI 기술을 실제 비즈니스 영역에 활용해 혁신하는 기업에서 나온다. AI 기술을 활용해 유통, 식음료 등 롯데그룹 비즈니스의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롯데벤처스뿐만 아니라 대기업 CVC 대부분이 자사 비즈니스와 관련된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그렇다. 삼성은 IT 및 전자 분야에,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및 모빌리티 분야에, 포스코는 제철 분야에 투자하는 식이다. 그래야 자사가 지닌 그 분야 핵심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는 기존 벤처캐피털과 CVC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과거 스타트업, 대학 및 연구기관, 벤처 자본, 정부 지원 등으로 구성된 벤처 생태계에 대기업 CVC가 더해지고 있다.”

―롯데인재개발원장을 지낸 인사 전문가다. 국내 스타트업 CEO들의 특징은.

“창의적이고 도전적이다. CEO는 물론 직원들이 MZ세대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개념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젊고 활기차고 똑똑하다. 그래서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이런 젊은이들과 일하니 나도 젊어지고 보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