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대축제 ‘2024 트라이 에브리싱’에서 강연하고 있다. /박용선 기자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개발해 CD플레이어 등 기존 제품을 밀어내며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을 평정했다. 그러나 잡스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이며 자신이 개발한 아이팟을 쓸모없게 만들고,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전 백악관 경제자문이자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Todd G. Buchholz)가 지난 11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대축제 ‘2024 트라이 에브리싱’에서 강조한 혁신의 대표 사례 애플이다.

부크홀츠는 “시장 1위의 자사 제품이어도 쓸모없게 만드는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혁신”이라며 “스타트업은 이런 혁신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크홀츠는 저서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러쉬’ ‘유쾌한 경제학’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반면 부크홀츠는 현재 위기를 겪고 있는 인텔을 언급하며 “혁신이 멈춰, 경쟁사에 밀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10~20년 전 PC에 인텔 브랜드 스티커가 붙어 있는 것만으로 그 PC의 품질을 보증할 정도로 인텔은 세계에서 가장 인정받는 반도체 메이커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엔비디아와 인텔을 비교하며 “10년 전 사람들은 엔비디아란 기업이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지금은 AI 반도체로 엄청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2조8678억달러(약 3844조원)로 인텔(838억달러·약 112조원)의 34배에 달한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AP연합

부크홀츠는 “인텔의 창업자 앤디 그로브가 강조한 ‘강박증이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애플의 잡스도 이런 강박증을 바탕으로 혁신을 이끌었고, 인텔의 성공을 이끈 그로브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부크홀츠는 “현재 인텔에는 혁신 강박증이 없다”고 했다.

부크홀츠는 경기 침체 시 기업 성장 전략도 밝혔다. 그는 “기업 대부분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반대로 보면 우리 기업이 시장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절대적 기회”라며 ‘BAP 전략’을 소개했다.

BAP 전략은 경기 침체 때 금리가 떨어지니 더 많은 돈을 빌려(Borrow) 비즈니스 확장에 나설 수 있고, 시장 내 기업 가치가 떨어지니 싼값에 기업을 인수(Acquire)하고, 어려움을 겪는 경쟁사로부터 유능한 직원을 데리고(Pouch) 올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경영 전략이다.

부크홀츠는 자사의 시장 내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등 비즈니스의 기본도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비즈니스 방향은 어디고, 현 시장 내 위치 그리고 경쟁력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며 “그래야 기존 시장에 어떤 제품·서비스가 있고, 우리가 그 시장에 없는 제품을 만들고,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크홀츠는 미래 주요 산업 변화도 전망했다. 그는 “자동차, 식품 등 소비자 경제의 두 축이 되는 산업이 역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전 세계 인구가 감소하고 자율주행차의 등장 등으로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줄면서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한 ‘식품 소비가 줄고 있다’는 존 퍼너 월마트 CEO의 말처럼 다이어트, 건강 등을 이유로 식습관이 바뀌면서 식품 산업의 변화가 전망된다.

부크홀츠는 “자동차, 식품 산업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다면, 앞으로 그 여유 자금이 어디로 흘러갈지 고민해봐야 한다”며 “엔터, 여행으로 갈까? 이걸 예측한다면 아마 스타트업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