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골판지 업계에서 자사주 취득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수출포장(002200)공업은 지난 9일 3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하기 위한 신탁계약 체결을 결정했고, 이보다 앞서 신대양제지(016590)가 6일 같은 목적으로 50억 원 규모의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22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신대양제지는 현재까지 이미 432만4450주 상당의 자사주를 취득한 상태다.
지난해 대대적인 주주환원책을 발표하며 2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던 아세아제지(002310)는 올 초 추가로 38만6814주를 취득했고, 지주사인 아세아(002030)도 세 차례에 걸쳐 총 3만4900주의 자사주를 확보했다. 대림제지(017650)도 3만5000주의 자사주를 매입했다.
실적이 좋지 않은 영풍제지(006740)나 태림포장(011280) 정도를 제외하곤 골판지 상장사의 공격적인 자사주 취득이 이어지는 분위기다.
기업이 자사주를 사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주주가치를 제고하고 주가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통상 실효성을 위해서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소각해 발행 주식 수를 줄인다. 소액주주와 갈등을 벌여 온 아세아제지를 필두로 이러한 주주환원 분위기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택배 물류가 급증하고 관련 상자 수요도 뛰면서 특수를 누렸던 골판지 업계는 최근 불황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상자 수요가 쪼그라든 데다 골판지 원재료가 되는 폐지 발생량까지 동시에 줄어들며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적 발표를 종합해 보면 아세아제지 매출은 올 상반기(1~6월) 4459억원으로 작년 상반기(4535억원)보다 약간 감소했는데, 영업이익은 498억원에서 241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같은 기간 신대양제지의 매출은 322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와 유사했으나 영업이익은 358억원으로 40% 넘게 급감했다.
8월을 기점으로 골판지 상자 원재료인 원지를 만드는 회사들이 잇따라 평균 20%의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이유다. 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3분기부터는 가격 인상을 계기로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로 인한 이익잉여금을 다시 주주환원을 위한 자사주 매입 등에 투입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신대양제지, 아세아제지 등 굵직한 골판지사들의 지속적인 자사주 취득이 자진 상장폐지를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다. 업계에선 신대양제지의 자회사 대양제지가 자진 상폐를 결정한 전례가 있다. 2020년 큰 불로 주요 사업을 유지할 설비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공동대표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을 100% 자회사로 편입한 뒤 상장 폐지시키고 지주만 남은 메리츠금융지주(138040)의 사례처럼 궁극적으론 중복 상장을 줄여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 제대로 된 밸류에이션(가치 대비 주가)을 받을 방법”이라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충분히 높고, 자회사 주주 간 이해충돌 가능성이 최소화된 경우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만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