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중순 종이 박스를 만드는 데 쓰는 원재료인 ‘골판지 원지’ 제조업체 ‘톱3′ 아세아제지(002310), 신대양제지(016590), 태림페이퍼 등이 일제히 평균 20%의 가격 인상에 나섰거나 8월 중순부터 인상을 예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지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는 것은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한솔그룹의 한솔페이퍼텍 등까지 포함하면 인상 대열에 합류한 업체는 전체 시장 점유율 85%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아직 동참하지 않은 곳은 고려제지·대림제지(삼보판지의 계열사), 한국수출포장(002200) 정도다. 이들 역시 시기를 저울질 중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골판지 원지는 폐지(종이자원)를 주 원료로 표면지(겉지)와 이면지(속지), 표면지·이면지 사이에 들어가는 구불구불한 골심지 등 골판지를 제작하는 데 사용되는 재료다. 이들 원지를 접착해 ‘골판지 원단’을 만들고 종이 박스를 만든다. 이번 가격 인상으로 원지를 사다가 포장해 이를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간 포장업체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손민균

5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주요 골판지 원지 제조기업은 원재료인 폐지의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정 등으로 골판지 원지 가격을 지종별로 톤당 8만~9만원가량 인상한다고 삼보판지·태림포장(011280) 같은 가공 구매기업에 통지했다. 3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약 20% 상승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폐지를 가져다가 박스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다시 분리수거로 회수가 되는 구조가 돼야 하는데 최근 경기가 안 좋아서 박스 수요 급감과 함께 폐지 발생량이 줄어들고 있다”며 “이에 따라 통상 평균 10일 정도의 재고 보유 수준이 3일 이내로 급감했을 정도로 폐지 공급이 타이트한 상황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공급 부족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홍해 이용 선박 감소로 동남아시아까지 가야 할 유럽산 폐지가 줄어들면서 한국의 폐지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원재료의 수출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각종 비용 상승으로 인한 경영 환경 위축도 단가 인상에 영향을 미쳤다. 3대 골판지 원지사인 태림페이퍼는 지난 7월 16일부터 가격 인상을 공지하면서 “지난 3년간 인건비 상승, 금리 인상, 제조 경비 상승 등 지속적인 원가 상승에 종이자원 가격 상승 등으로 경영 환경이 악화해 더 이상 기업이 감당할 수 없어 부득이 원지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혔다.

실제 관련 기업들의 경영 실적은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전 가격 인상(2021년) 이듬해인 2022년 태림페이퍼의 매출은 9684억원으로 늘었다가 지난해 다시 8941억원으로 8%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영업이익도 1260억원에서 1091억원으로 줄었다.

이런 추세는 매출 1조원을 돌파했던 아세아제지가 지난해 9083억원으로 뒷걸음질 치는 등 동종업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신대양제지 매출도 2022년 6764억원에서 2023년 6454억원으로 감소했다.

다만 이번 가격 인상으로 골판지 상자 업체들의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신봉호 한국골판지포장산업협동조합 전무는 “원지 가격이 인상되더라도 대기업 위주의 수요기업과의 거래를 이어가기 위해선 상자 가격을 덩달아 올리기 어렵다”며 “주요 원재료 가격이 10% 이상 변동할 경우 그에 연동해 납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는 ‘납품대금 연동제’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합에 따르면, 골판지 상자는 원재료인 원지가 전체 60% 이상 차지하는 제품이다. 골판지 원지 가격이 20%가량 상승하면 상자 가격 또한 약 12% 이상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조합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