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연예기획사 하이브(352820)의 연 매출 2조원 일등 공신 박지원 대표가 사의를 표명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그는 산하 레이블(소속사) ‘어도어’를 이끄는 민희진 대표와 경영권 찬탈을 두고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이미지와 성과에 타격을 입은 하이브와 박 대표가 ‘대표이사 교체 카드’를 통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박지원 하이브 CEO. / 하이브 제공

하이브는 24일 박 최고경영자(CEO) 후임으로 이재상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하이브는 추후 주주총회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 내정자를 정식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이 내정자는 새 기업 전략 ‘하이브 2.0′을 주도할 전망이다. 회사 측은 중장기 방향성을 담은 ‘하이브 2.0′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이르면 다음 주 발표할 예정이다.

박 대표는 이날 사내 메일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과 조직의 변화는 오랜 기간 숙고하며 논의해 온 사안”이라며 “이재상 CSO는 하이브의 비전, 미션, 핵심 가치를 계승하면서 성장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적임자”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미래를 위해 저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살릴 수 있는 분야에서 계속해서 기여해갈 것”이라며 “새로운 리더십과 변화를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2020년 5월 하이브가 빅히트엔터테인먼트라는 상호를 사용했을 때 전사 CEO로 합류한 박 대표는 이듬해인 2021년 방시혁 의장을 대신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고, 빅히트의 기업공개(IPO)와 하이브로의 상호 변경, 멀티레이블 체제 개편 등을 주도한 공신으로 꼽힌다.

2020년 4500억원대였던 하이브 매출은 2021년부터 1조2000억원대로 크게 늘었고, 지난해엔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2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또 2021년 100% 자회사인 하이브아메리카를 통해 글로벌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속한 이타카 홀딩스를 약 1조원에 전격 인수했다.

또 지난해 미국 유명 힙합 레이블 QC 미디어 홀딩스와 라틴 음악 업체 엑자일 뮤직을 사들이며 글로벌 시장 확장에 공을 들였다. 이들은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인 ‘위버스’에 입점하는 등 새로운 회사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지난 4월 25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하이브가 어도어와 뉴진스를 차별해 왔다면서 박지원 하이브 대표와의 카카오톡을 공개했다. /이은영 기자

하지만 어도어 민 대표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노출되는 과정에서 박 대표와의 사적인 카카오톡 내용이 공개되는 등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점이 이번 사임의 주요 배경으로 해석된다.

게임업계에 적용되던 멀티 레이블 체제를 엔터사에 이식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나온 것이란 지적까지 나오며 성과가 희석됐다는 평을 받았다. 박 대표는 넥슨코리아 CEO를 지낸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아메리카가 지난해 1000억원 이상의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민 대표가 박 대표와의 카카오톡에서 ‘이타카처럼 영업이익도 안 나는 말도 안 되는 회사를 1조원 주고 사놓고서 1조원 언제 뽑아먹을 거냐’고 비판한 내용을 공개해 글로벌 성과 역시 폄훼됐다”면서 “미국시장으로 진입 비용을 지불한 것을 레이블 대표가 공개 비난한 것도 그가 평소 스트레스를 받은 이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민 대표는 하이브가 마이너스 계열사(하이브아메리카 지칭)는 방치하고, 흑자를 내는 어도어의 기업가치는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 대표는 CEO에서는 물러나지만 회사를 떠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내에서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이브는 이에 대해 “박 CEO는 향후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테크놀로지(기술)의 융합 영역에서 본인의 전문성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회사 성장 전략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