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로 오염을 정화하는 원천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 ‘비제이씨(BJC)’는 지난달 16일 쿠웨이트 대기업인 ‘알가님 인터내셔널(Alghanim International)’과 412만5000달러(약 60억원) 규모의 오염된 토양 50만톤을 정화할 미생물을 1차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해 놓고도 보름째 손을 놓고 있다. 미생물을 배양해 쿠웨이트에 보내야 하지만, 이를 처리할 원자재비, 배양비, 인건비가 한 푼도 없어서다.

쿠웨이트는 30여년 전 이라크와 유전지대 소유권 분쟁으로 걸프전을 치렀다. 이때 이라크가 쿠웨이트 유전을 다수 파괴했고 땅속에서 기름이 쏟아져 나오면서 땅을 오염시켰다.

쿠웨이트 국영석유공사(KOC)가 이런 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유엔(UN) 측에 정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고, 이라크가 환경복원기금(우리 돈 약 4조원)을 내놓으면서 사업이 본격화했다. 현지 5개 주요 그룹이 오염된 흙 300만톤씩을 정화하기로 나눠 받았다.

BJC는 이 가운데 알가님과 계약을 맺고, 올해 말까지 1차분 납품을 시작으로 해당 토양을 정화할 미생물을 2028년 말까지 공급하게 된다. 총 계약 규모는 2475만달러(약 345억원)에 달한다.

BJC가 쿠웨이트에서 진행한 실증 테스트. 탱크로리 차량으로 흙더미에 15~20% 미생물을 섞어 준 뒤, 장비로 흙을 뒤집어 주면 4개월 만에 오염된 토양이 정화된다. /BJC 제공

BJC는 정자 모양의 살아 있는 균주가 유류 성분을 자연 분해하는 기술을 내세워 실증 테스트를 통과, 계약을 성사시켰다. 탱크로리 차량으로 흙더미에 15~20% 미생물을 섞어 준 뒤, 장비로 흙을 뒤집어 주며 산소만 공급하면 정화가 되는 구조다. 정화까지 4개월이 소요된다. 이 기술은 쿠웨이트는 물론, 베트남, 미국에서도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 현대차와 오랜 법적 공방에 자본잠식, 계약 있어도 대출 못 받아

회사가 처음부터 해외 사업을 타진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현대차(005380)에서 매출 100%를 올리던 곳이다. 2003년부터 15년간 현대차 울산공장 6개 공장에서 미생물을 통해 자동차 도장(페인트)에 쓰는 시너를 희석할 때 발생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및 악취를 정화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그러다 2017년부턴 기술 탈취 문제로 장기간 법적 다툼을 이어가면서 경영상 어려움에 빠져 있다.

특허청은 2018년 12월 현대차의 아이디어 탈취를 인정, 피해 보상과 제품 폐기를 권고했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아이디어 탈취 시정 권고 1호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는 컸으나, 형사법상 과징금은 국고로 귀속되기 때문에 실익이 없었다.

이에 회사는 현대차를 상대로 민사인 손해배상 소송에 나섰는데, 대법원 측은 기계나 부품이 아닌 미생물을 대는 BJC는 하도급 업체로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을 결정했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자본 잠식으로 폐업 위기 상태에 빠진 이유다. 국내 판로가 막히면서 해외 사업 추진을 모색하고 실제 계약까지 따냈지만, 이를 추진할 실탄(대출)도 막혀 있다.

최용설 대표는 “BJC는 정부출연기관인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이 개발한 국가 기술을 단독 이양받은 회사다”라면서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부 도움으로 기술보증기금의 특례 보증서를 받아 가도 은행이 회사가 이자를 갚을 수 있는지를 보기 때문에 대출 대신 투자를 받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BJC가 죽게 되면 국가 기술이 사장되는 것인 만큼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 “22대 국회, 과징금 피해기업 지원기금법 재추진해야”

BJC는 현재 베트남으로부터도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1급 발암물질인 고엽제(제초제) 다이옥신을 살포한 여파로 토양이 여전히 오염된 상태여서다. 이에 원천기술을 보유한 KIOST를 포함해 한국농어촌공사, 안전성평가연구소 등 3개 기관이 BJC와 손잡고 1년간 실증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현지 환경부, 외교부 등과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을 활용해 미생물을 공급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회사는 최근 미국의 대외 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로부터도 워크숍 초청을 받았다.

중소기업을 법률 지원하는 재단법인 경청 측은 “BJC는 기술력을 가진 피해 중소기업이 긴급 경영 자금이 모자라 사업이 좌초 위기인 상황”이라면서 “지난 국회가 끝나며 폐기된 기술 탈취 기업의 피해 구제를 위한 ‘과징금 피해기업 지원기금법’이 22대 국회에서 재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등의 행위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기업의 과징금을 전액 국고로 귀속할 게 아니라 일부를 피해 중소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