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로 ‘창업가 거리’. 구(舊)역삼세무서 사거리에서 역삼초교 사거리로 이어지는 약 560m의 거리에는 팁스(TIPS)타운, 마루, 강남 취·창업허브센터, 포스크 체인지업 그라운드 등 민간과 정부가 설립한 스타트업 지원센터가 모여 있다. /박용선 기자

지난 10일 찾은 서울 강남구 역삼로 ‘창업가 거리’는 젊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로 활기가 넘쳤다. 강남구청이 2021년부터 스타트업 성장 지원을 위해 매년 주최하는 ‘창업가 거리 축제’가 열리기 일주일 전이라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축제는 오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열린다. 거리 곳곳에는 ‘비상을 향한 꿈의 활주로 스타트 트랙(창업가 거리)’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창업가 거리에 있는 강남 취·창업허브센터 1층 코워킹라운지에 들어서자, 입주 스타트업 CEO들의 열띤 회의가 한창이었다. “이번 투자유치는 어떻게 됐나요?” “저희는 비즈니스 방향을 조금 틀기로 했습니다.” “유통 대기업과 제품 배달 서비스 관련 협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사를 소개하면서 투자유치나 고객 확보, 마케팅 등의 의견을 공유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검정색 반팔티를 입은 남성, 반바지에 모자를 눌러쓴 여성 등 젊은 CEO답게 편한 복장도 눈에 띄었다.

이날 센터에선 해외 스타트업 팀의 방문 프로그램도 열렸다. 태국 스타트업 CEO와 대학 교수, 정부 관계자들이 센터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벤치마킹 하러 온 것이었다. 최종원 강남 취·창업허브센터장은 “태국·몽골 등 아시아와 유럽에서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배우기 위해 센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강남 창업가 거리는 구(舊)역삼세무서 사거리에서 역삼초교 사거리로 이어지는 약 560m의 스타트업 지원 특화 거리를 말한다. 이곳에는 강남 취·창업허브센터(강남구청)를 비롯해 팁스(TIPS)타운(중소벤처기업부), 마루(아산나눔재단), 체인지업 그라운드(포스코) 등 민간과 정부가 설립한 스타트업 지원센터가 모여 있고, 약 170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있다.

창업가 거리는 2022년 1월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벤처기업육성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이 지구 안에서 스타트업은 취득세 50%, 재산세 35%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VC 접근성 좋고, 임대료 40% 저렴…비즈니스 컨설팅도

지난 3월 열린 마루의 커뮤니티 행사 '마루타운홀 미팅'. 스타트업 CEO들이 참여해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 / 아산나눔재단 제공

강남구는 스타트업 메카로 발전하기 유리한 입지적 조건을 갖고 있다. 국내 VC의 절반가량이 강남구 테헤란로와 역삼로에 몰려 있다. 스타트업 성장의 핵심 요건 중 하나가 바로 투자유치다. 창업 거리 내 위치한 스타트업 지원센터들은 네트워크를 활용, 입주 스타트업의 투자유치를 지원한다.

성과도 좋다. 아산나눔재단 마루의 경우 2023년 기준 입주 스타트업의 투자유치율이 94%에 달했고, 평균 투자 유치금액은 12억원이었다.

창업가 거리에 있는 카이스트(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의 정회훈 대표는 “스타트업 투자는 한번의 미팅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며 “CEO를 계속해서 만나며 비즈니스 성장성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창업가 거리에는 스타트업과 VC가 모여 있어 이런 과정이 굉장히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강남구가 스타트업 메카로 부상한 또 다른 배경에는 저렴한 임대료 지원 효과도 있다. 창업가 거리 내 입주한 스타트업 지원센터별로 임대료 책정 방법은 각기 다르지만, 보통 시세 대비 30~40% 정도 저렴하다. 월 임대료가 약 12만~15만원으로 알려졌다. 비즈니스 고도화는 물론 법률, 인사, 마케팅, 판로 개척 등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컨설팅도 지원한다.

신재청 삼신 대표는 “투자를 받기 전 저렴한 월세가 큰 도움이 됐다”며 “투자유치 후에는 회사 제품을 설명하는 영상 제작을 센터에서 지원해주는 등 마케팅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삼신은 난소 나이 자가검사키트를 개발·서비스하는 의료 기술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8월 강남 취·창업허브센터에 입주했고, 이후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 10일 강남 취·창업허브센터 1층에 스타트업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안내돼 있다. /박용선 기자

창업가 거리는 지하철 2호선 역삼역에서 도보로 7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이 용이하다. 이는 젊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에게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마루 입주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김모씨는 “구로디지털단지 쪽 스타트업에도 붙었지만, 이곳에 입사한 건 편리한 대중교통과 많은 놀거리 때문이었다”면서 “아무래도 강남권의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이용할 수 있어 편하게 출퇴근할 수 있고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며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컸다”고 했다.

강남 역세권에 집중된 보육 시설도 아동이 있는 직원들에게 입사 동기가 됐다. 팁스타운 입사 1년 차인 이모씨는 “네 살 된 딸을 회사 인근에, 팁스타운이 지원해주는 보육 시설에 맡기고 출근한다”며 “보육을 맡기는 문제는 회사를 고를 때 큰 고려사항이었다”고 설명했다.

◇”창업가 거리는 기술 스타트업 만드는 핵심 시스템”

“스타트업, VC,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업 및 기관)가 모인 창업가 거리는 기술 스타트업을 만드는 핵심 시스템이다.”

팁스타운 위탁 운영사인 한국엔젤투자협회의 고영하 회장은 “기술 스타트업을 얼마나 많이 키워낼지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스타트업 생태계 핵심 역할을 하는 창업가 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 회장은 지난 2015년 중기부와 함께 강남 창업가 거리를 구축한 핵심 멤버다. 고 회장은 “창업가 거리는 2015년 이전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강남의 외진 곳, 달동네로 여겨졌다”며 “현재는 수많은 스타트업과 VC, 액셀러레이터가 모인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창업가 거리는 2014년 4월 아산나눔재단의 스타트업 창업지원센터 마루180 개관을 시작으로, 2015년 팁스타운이 들어서면서 형성됐다. 2021년 마루 두 번째 센터 마루360과 6번째 팁스타운 체인지업 그라운드 그리고 2022년 강남 취·창업허브센터가 잇달아 개관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창업가 거리의 최대 실적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기업)을 배출한 것이다. 2014년 마루에 입주했던 인공지능(AI) 기반 암 진단 설루션 스타트업 루닛은 창업가 거리가 배출한 퍼스트(최초의) 유니콘이다. 루닛은 2022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이후, 2023년 6월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하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창업가 거리를 거친 또다른 코스닥 상장사인 의료 AI 설루션 스타트업 뷰노의 시가총액(10일 기준)은 3875억원에 달한다.

이러한 노력은 최근 서울시가 글로벌 창업생태계 평가에서 높은 순위(9위)를 차지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2020년 19위에서 10계단이나 뛰어오른 수치다.

지난 11일 스타트업 지놈(startup Genome)이 영국 런던에서 발표한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GSER)’에 따르면 서울은 전 세계 100개국 300개 도시를 대상으로 한 ‘창업하기 좋은 도시’ 순위 조사에서 일본 도쿄(10위), 중국 상하이(11위)를 제치고 9위에 올랐다. 파리와 베를린도 서울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