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창업 세대 고령화로 세대교체가 절실하지만, 높은 상속세 부담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축적한 기술과 경영 노하우들이 다음 세대로 승계되지 않아, 국내에서 혁신을 이끈 중소·중견기업의 지속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2년 제조 분야 중소기업 경영인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30.7%로 2010년(13%) 대비 17.7%포인트 늘었다. 중소기업 경영인의 평균 연령(2022년)은 54.9세였다.
◇혁신기업 상속세 인하로 R&D 투자 선순환
중소·중견기업 전문 민간 연구기관 파이터치연구원의 라정주 원장은 28일 조선비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연구개발(R&D)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는 ‘혁신 중소·중견기업’을 선정해 상속세를 인하해야 한다”며 “상속세를 낮춰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고민하는 가업 상속, 기업의 지속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5년간 평균 R&D 투자 비용이 해당 업종 평균보다 많은 기업을 ‘혁신기업’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이다.
라 원장은 혁신 기업에 대한 상속세 인하는 업계 내 R&D 투자를 늘리는 선순환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상속세 인하 혜택을 본 혁신 중소·중견기업들이 (아낀 세금을) 또다시 R&D에 투자하고 고용을 늘려 한국 경제를 일으킬 총혁신투자를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 원장은 기업의 상속세를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지만 가업 승계에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요건이 엄격해 세제 혜택을 받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라 원장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후에도 가업유지, 고용확대 의무 등 상속인이 지켜야 할 사후관리 요건이 더 까다롭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업을 하다 보면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 이런 사후관리 요건을 못 지킬 가능성이 크다”며 “중소·중견기업도 이를 잘 알고 있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했다.
현행 가업상속공제 제도에 따르면 연매출 5000억원 이하인 기업을 대상으로 피상속인(사망한 창업주 또는 오너)의 업력이 10년 이상이면 300억원, 20년 이상이면 400억원, 30년 이상이면 600억원의 상속세를 각각 공제한다.
상속인이 가업상속공제를 받더라도 피상속인은 상속 후 5년 이상 가업을 유지해야 하고, 각 사업연도 정규직 근로자 수의 평균이 상속 직전 2개 사업연도 정규직 근로자 수 평균의 90% 이상을 유지해야 하는 등 사후관리 요건을 지켜야 한다.
◇OECD 평균보다 최대 4배 높은 韓 상속세
한국의 상속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소기업학회 회장을 지낸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상속세 완화가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창업해 기업의 성장을 이끈 경영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감세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또한 “부의 대물림 등 경영인이 빠질 수 있는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이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금의 20%)까지 합치면 세율이 최고 60%로 뛴다. OECD 평균은 15%다.
◇주가 발목 잡는 상속세⋯야당은 인하 반대
최근 정부는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상속세 등 가업 승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상속세 부담 때문에 창업주가 주가를 소극적으로 관리하는 등 보유한 주식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4·10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부의 대물림’ ‘양극화’ 등을 이유로 상속세 완화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 회장(한양여대 세무회계학과 교수)은 “상속세 완화가 어렵다면, 상속세를 연기해 주는 과세이연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상속인이 주식 등 상속세 대상 자산을 처분할 때까지 상속세 납부를 연기해주는 일종의 과세이연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