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물리학은 물리학계에서 오랫 동안 비주류 취급을 받아 왔다. 아인슈타인마저도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죽을 때까지 양자 물리학을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양자를 이용한 기술은 그 사이에도 차근차근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양자 컴퓨터가 최근 수년간 괄목할 만큼 발전을 거듭했고, 양자 통신과 양자 센싱 등 일상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양자 기술 역시 상용화 단계까지 성장했다.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도 양자 얽힘 현상을 현실에서 증명한 세 명의 물리학자들에게 돌아갔다. 향후 미래 산업계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양자의 시대가 이제 막을 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조선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양자의 개념이 무엇이고, 양자가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알아봤다. [편집자 주]
“퀀텀 내셔널리즘(Quantum Nationalism·양자 국가주의)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9월 19일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원에서 만난 한상욱 양자정보연구단장은 “양자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단장은 2012년 출범한 양자정보연구단에서 10년 넘게 양자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2020년 상온에서 동작이 가능한 양자 컴퓨터를 중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개발하는 등 국내 양자 기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한 단장은 “양자 기술은 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뛰어넘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패러다임을 뒤바꿀 기술”이라며 “앞으로 양자 기술을 보유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아직 양자 컴퓨터·센서·통신 등 전 분야에서 아직 미국·유럽·중국에 뒤처져 있다며 국가 차원의 양자 전략을 수립하고 인재 양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한 단장과 일문일답.
-양자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나.
“우선 지금의 양자 컴퓨터 수준을 평가하자면, 아직 초기 진공관 컴퓨터인 에니악(ENIAC) 수준에 불과하다.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모든 계산식을 양자 컴퓨터가 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사칙연산은 기존 클래식 컴퓨터가 훨씬 잘한다. 그래서 양자 컴퓨터가 계산을 잘 할 수 있는 문제를 찾고, 이를 양자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는 알고리즘으로 바꿔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 계산의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오류 정정 작업도 필수다. 이 과정에 수십 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 KIST도 장기 과제로 연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양자 컴퓨터가 나온다면 세상에 굉장한 혁신을 가져다줄 것으로 예상한다. 신소재와 신약 개발 등 노동 집약적이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계산 작업을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더 빨리 계산할 수 있다. 에니악과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수준의 차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한국은 2030년 양자 기술 4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현재 어느 수준까지 와 있나.
“현재 양자 통신은 중국, 양자 센서는 유럽, 양자 컴퓨터는 미국이 가장 앞서있다. 정량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작년 기준 한국의 양자 통신 분야는 다른 양자 기술 선도국과 비교해 80%, 센서는 70%, 컴퓨터는 60%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양자 컴퓨터 분야가 다른 나라보다 약할 수 있다. 하지만 통신 분야는 SK텔레콤과 KT 등 민간 기업 간의 치열한 연구개발(R&D) 경쟁 덕분에 선도 국가와 격차를 빠르게 줄여나가고 있다.”
-전 세계가 앞다퉈 양자 연구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퀀텀 내셔널리즘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국가들은 공동으로 양자 연구를 진행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국가별로 양자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양자 기술이 전략 기술이기 때문이다. 기초 원천 연구만 할 때는 양자 기술의 파급력을 몰랐는데, 점점 석기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뛰어넘는 것과 맞먹을 정도의 기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2018년 5월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의 맥스 니키아스(C. L. Max Nikias) 총장이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을 소개하고 싶다. 양자 패권 전쟁에서 ‘미국이 중국에 지고 있다(losing)’는 내용이었다. 당시 중국이 100억달러(약 14조5800억원)를 투자해 양자 정보 과학 연구소를 지을 때, 미국이 양자 기술 연구에 3억달러(약 4374억원)를 투자한 게 발단이었다. 니키아스 총장은 이를 두고 ‘지금 미국이 기술 패권을 쥐고 있는 것은 과거 소련과의 우주 전쟁에서 각종 과학 기술 연구에 과감히 투자한 덕분이다. 지금 당장 국가 차원의 양자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패권국 지위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자 기술에 대한 투자가 수십 년 뒤 패권 국가를 나누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이 글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해 12월 미국에서는 ‘국가양자이니셔티브(NQI)’ 법안이 통과돼 5년간 양자 기술 연구에 12억달러(약 1조7496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또 국가양자조정국이라는 백악관 직속 컨트롤타워도 만들어졌다.”
-민간에만 양자 연구개발을 맡길 수 없나.
“양자 기술은 수십 년이 걸리는 장기 연구 과제다. 민간에만 연구개발을 맡기기엔 아직 시장이 없다. 민간 기업 입장에선 수익을 창출해야 연구개발을 지속할 명분이 생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데 수십 년 동안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부가 확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시장이 커질 수 있게 이끌어 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하고, 많은 인재들이 양자 분야에 뛰어들 수 있다. 기업과 인재가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는 발전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 일례로 영국에서는 양자 연구개발을 통해 레이저와 같은 다른 연관 산업도 육성할 수 있다는 점, 어려운 연구 과제를 통해 미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는 점 등 두 가지 논리로 정부를 설득했다고 한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두 가지 전략이 있다. 우선 한국이 가장 잘하는 반도체 제조업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양자 분야는 기초 원천 기술 개발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다. 산업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만들어 쓰임이 되게 만든다’는 뜻이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적인 반도체 강국으로 평가받지만, 초창기에는 반도체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웨이퍼의 크기를 늘려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등 제조 기술에 집중한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오게 됐다. 반도체 공정을 활용해 양자 연구개발에 필요한 양자소자(나노미터 크기에서 나타나는 양자현상을 응용한 소자)를 효율적으로 만들어낸다면 우리도 양자 기술 선도국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 한국에는 뛰어난 엔지니어들이 많은데, 이들을 양자 연구 분야로 진입시켜야 한다.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양자를 연구하겠다는 인재는 극소수다. 정부가 확실한 로드맵을 바탕으로 양자 기술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그러면 우수한 학생들이 양자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하고, 반도체와 전자공학 분야의 뛰어난 교수들도 양자 연구에 뛰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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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아스페·클라우저·차일링거,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③[Infographic] 양자 기술 혁명이 온다
Part 2. 양자 기술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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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전문가 제언
⑧[Interview]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