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해 그녀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인생 최대 복수를 준비하는 여자가 있다. 설사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없다.

‘몸값’(2015), ‘콜’(2020), ‘하트어택’(2020)을 연출한 이충현 감독의 신작 ‘발레리나’(제작 클라이맥스 스튜디오, 제공 넷플릭스)는 분노에 화가 치밀어 최 프로(김지훈 분)를 완벽하게 죽이려는 전직 경호원 옥주(전종서 분)의 핏빛 복수를 다룬다.

옥주는 우연찮게 재회한 동창 민희(박유림 분)와 다시금 우정을 쌓아가는데, 최 프로가 판을 깔아놓은 ‘물뽕’과 불법촬영 성범죄 사건에서 민희가 희생양이 됐음을 알게 된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친구의 유언에 그녀는 최 프로를 상대로 목숨바쳐 싸운다. 옥주의 복수극에 일말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건 그녀가 범죄자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그녀의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어서다.

혼자서도 여러 명의 남자들을 처리할 정도로 끝내주는 칼부림, 총잡이 실력을 겸비한 옥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발레리나’는 감각적이고 직선적인 재미를 주는 여성 액션영화다. 영상미만으로 황홀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실에서는 몰카 피의자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전직 경호원 옥주가 그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면서 실제 사건들이 보여온 미적지근함을 분노로 폭발시켰다.

특히 현실에서는 여성 혼자서 여러 명의 남성들과 싸운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기 힘든데 옥주 역의 전종서가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장애물을 뚫고 최 프로를 없애려는 속도감 넘치는 활약을 보여줬다.

자비와 용서는 없다는 얼굴로 범접할 수 없는 강렬함을 발산했기 때문이다. 전종서 특유의 나른함과 몽환적인 매력이 돋보인다.

전종서는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청춘의 이미지와 함께 프로 정신을 겸비한 경호원의 아우라를 동시에 보여줬다.

전종서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처음 만난 박유림과 어색함을 지우지 못해 아쉽다. 두 사람은 극 중 베스트 프렌드인데 전종서와 박유림의 어색한 현실 관계 탓인지, 옥주가 민희를 위해 목숨 걸고 복수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에서 두 캐릭터가 조금 더 절친한 사이임을 과시했더라면 ‘친구 때문에 복수하는 건 알겠는데 왠지 공감가지 않는다’는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터.

‘발레리나’가 이달 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이후 평점을 보면 10점 대 1점(네이버 기준)으로 극명하게 나뉘었다. 1점을 주는 이들과 10점을 주는 이들 간 팽팽한 기싸움이 한창 펼쳐지고 있는 것. 10점을 준 관객들은 “전종서 진짜 멋있다. 몰입해서 봄”(idp**), “잔인하지만 말 그대로 아름답고 잔인한 복수극이었다”(sopi***), “보기 드문 스토리. 보기 드문 결말”(0924**) 등 호평을 보냈다.

반면 1점을 준 관객들은 “정말 끝장나게 개연성 없고…”(wnwj***) “단순한 스토리. 쓸데없이 잔인함”(iak**) “남는 건 영상미”(rida***) “스토리 연관성X. 그저 자극적인 소재 총집합”(hseu***) 등의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네티즌 평점 평균은 6.54점이며 남자는 5.55, 여자는 7.76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쫓는 여성 경찰들의 활약을 그린 영화 ‘걸캅스’(2019)는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으며 일명 ‘영혼 보내기’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바. ‘발레리나’는 극장 개봉이 아닌 OTT 영화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할까?

여성 원톱 액션영화가 국내에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성범죄자를 완전 박멸하는 전직 여성 경호원의 이야기가 언제 또 있었기에 따분한 클리셰인지, 안 봐도 아는 내용이라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명확한 이유가 제시되지는 않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에게 일종의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발레리나’는 곳곳에 숨겨진 메타포가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이충현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동음이의어를 통한 비웃음으로 짚고 넘어가고 싶었던 물의를 빚은 사건들과 어쩌면 향후에도 바뀌지 않을 현실을 빗대어 풍자하고 폭로했다.

‘발레리나’는 디지털 성범죄, 특히 성착취 영상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시대적 흐름을 무겁게 인식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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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넷플릭스

[OSEN=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