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에 올라온 백화점 실적 거래 글. /네이버 캡처

연말이 다가오면서 주요 백화점 우수고객(VIP)이 되기 위해 ‘구매 실적’을 거래하는 게 유행하고 있다. 구매 실적 거래란 활발한 소비 활동을 통해 내년도 VIP 등급을 일찌감치 달성한 고객이 타인에게 일정 수수료를 받고 초과 구매한 금액을 대신 적립하도록 하는 행위다.

매해 연말마다 이런 행태가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일정 시세가 ‘국룰’(보편적으로 통용된다는 뜻)로 자리 잡았다. 백화점 업계는 대응책 마련에 고심이 깊지만 현실적으로 실적 거래를 일일이 잡아내긴 어려워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적발 시 업무방해죄에 해당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23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당근과 네이버 중고나라 등에는 백화점 실적을 사고파는 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백화점은 고객들의 1년 구매 실적을 합산해 VIP 고객을 추린다. 롯데백화점은 12월부터 다음 해 11월까지 구매 실적을 합산하고, 신세계백화점과 현대백화점, 갤러리아백화점은 1월부터 12월까지의 실적을 합산한다. 실적 거래 글은 백화점들의 구매 실적 합산 마지막 달인 11월, 12월에 가장 많이 올라오고, 이때 시세도 연중 가장 높다.

VIP가 되면 발렛 파킹, 무료 주차권, 라운지 이용, 할인 쿠폰, 명절 또는 연말 선물 등 혜택이 다양하다. 등급에 따라 혜택도 차별화돼 있다. 이용할 수 있는 라운지가 구분돼 있고 할인 혜택 폭과 횟수도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VIP 등급을 이미 채운 사람은 남는 구매 실적을 팔려고 하고, 원하는 등급의 실적을 채우지 못한 사람은 실적을 사려고 하는 것이다.

강남 신세계 백화점을 이용하는 한 소비자는 “엄마들끼리 백화점에서 식사를 하면 어느 등급의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지가 관심사”라며 “실적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실적을 사고팔 때 수수료율은 대략 신세계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은 4%, 현대백화점과 롯데백화점은 3% 수준이다. 1000만원의 실적을 산다고 하면 30만~40만원을 지불하는 것이다. 실적 마감 직전인 연말이 되면 8~9%까지 올라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XX 백화점 실적 1억5000만원 삽니다”라는 글도 여럿 올라와 있다. 백화점에서 가장 높은 VIP 등급을 통째로 돈 주고 사겠다는 셈이다. 만약 수수료 5%에 거래가 성립된다고 하면 이 사람은 750만원에 백화점 최상위 VIP가 된다.

실적을 넘겨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상품을 결제한 뒤 실적을 구매하려는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로 적립해 주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미 구입을 마친 경우라면 결제를 취소했다가 재결제하면서 타인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인터넷상에서만 거래하는 경우에는 사기도 빈번하다. 실적을 사려는 사람이 실적을 팔려는 사람에게 입금했는데, 판매자가 돈만 받고 적립을 안 해주는 경우가 있다. 돈 받고 적립까지 해줬지만, 실적 판매자가 갑자기 상품을 환불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 실적 판매자와 구매자가 백화점에 동행해서 적립하기도 한다.

서울 한 백화점의 샤넬 광고판. 사진은 기사와는 무관. /뉴스1

◇판매자·구매자 모두 업무방해 성립… 세무조사 가능성도

최근에는 백화점 실적과 함께 현금영수증을 거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물건을 구매한 사람이 제3자의 이름으로 현금영수증을 발행한 뒤 1~2%가량 수수료를 받는 방식이다. 현금영수증은 현금 또는 백화점 상품권으로 상품을 구입하면서 점원에게 휴대전화 번호만 이야기하면 발행되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1000만원의 실적을 4%에 사면서 현금영수증도 1%에 산다고 하면 50만원에 백화점 실적도 채우고 조건이 맞으면 세금 혜택(소득 공제)까지 받게 된다.

실적 거래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노아라 법률사무소 찬란 대표변호사는 “실적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백화점에 대한 업무방해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했다. 업무방해가 인정되면 형법 제314조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 거래 행위를 백화점 측에서 일일이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백화점의 ‘큰 손’인 실적 판매자까지 업무방해로 고소하기는 애매하다”고 말했다.

노 변호사는 “실적 구매자의 경우, 신고된 소득에 비해 과다한 지출이라고 확인되면 세무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세무조사에서 타인이 쓴 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조세범처벌법 제3조 제1항의 ‘사기나 그 밖에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환급·공제받은 세액의 2배 이하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