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공동 협상을 담합 규제 예외로 인정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배달 플랫폼과 입점 업체 간 관계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법안이 시행되면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입점 업체들은 수수료뿐 아니라 광고비, 정산 주기, 약관 변경, 노출 알고리즘 등 거래 조건 전반에 대해 집단으로 협상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전망이다.

서울 시내에서 라이더들이 음식을 배달을 하고 있다. /뉴스1

3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을의 협상력 강화를 위한 제도 개편 방안'을 보고했다. 공정위는 소기업·소상공인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상대로 공동 협상을 하더라도 이를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보지 않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협상 참가자가 모두 소기업과 소상공인인 경우 협상 참가자와 상대방, 협상 내용 등을 공정위에 통지하면 즉시 담합 규정 적용이 면제된다. 효력은 5년간 유지된다. 가격과 거래 조건, 거래량, 거래 지역 등에 대한 정보 교환과 합의는 물론 공동 납품 거부와 같은 단체행동도 허용된다.

다만 입찰 담합은 예외이며 소비자 피해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 공정위가 금지명령이나 임시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단결을 보장하되 담합으로 악용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역시 소비자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등 중대한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단체행동을 중단시키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업종별 거래 구조 반영한 세부 기준 필요"

지금까지는 배달앱과 입점 업체가 개별 계약을 체결하는 구조여서 점주들의 협상력이 제한적이었다. 지난해 배달앱 사회적 대화기구가 운영됐지만 참여 단체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대표성과 강제력이 부족해 실질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었다.

업계에선 이번 제도가 시행될 경우 협상 범위가 단순히 수수료 인하 요구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약관 변경이나 무료 배달 정책, 광고 상품 개편, 노출 알고리즘 변경 등도 협상 대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권이 폭넓게 인정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배달앱에는 수십만 개의 입점업체가 있는데 어떤 단체에 협상권을 인정할지 기준이 아직 없다"며 "단체마다 각각 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협상 비용과 경영 불확실성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점 업체들도 업종과 규모, 이해관계가 모두 달라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다르게 요구할 수 있다"며 "단체 간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시장경제 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시장에서 형성된 거래 가격을 특정 사업자 단체가 집단적으로 협상하는 구조는 소비자가 유통업체를 상대로 가격을 낮춰달라고 공동 요구하는 것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플랫폼 부담이 커질 경우 결국 소비자 가격, 배달비 상승이나 마케팅 축소 등 다른 형태로 비용이 전가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보호라는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업종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갑을 관계 개선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필요하지만 플랫폼뿐 아니라 유통, 온라인 커머스 등 산업마다 거래 구조가 모두 다르다"며 "정부가 일률적으로 제도를 적용하기보다는 협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산업별 특성을 반영해 자율적으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어 "플랫폼만의 문제가 아니라 네이버 쇼핑, 유통업체 등 소상공인과 거래하는 거의 모든 산업으로 확대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세부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