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와인 애호가는 뉴질랜드 와인이라고 하면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떠올린다. 말보로(Marlborough) 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되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은 특유의 청량한 산미와 강렬한 열대 과일 향으로 전 세계 화이트 와인 시장의 표준을 재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뉴질랜드는 소비뇽 블랑의 성공에 힘입어 화이트 와인 강국으로 자리매김했고, 일관된 품질과 현대적인 스타일을 안정적으로 생산한다는 신뢰를 구축했다. 뉴질랜드에 '소비뇽 블랑의 나라'라는 별칭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와인 업계에서는 소비뇽 블랑의 눈부신 성공 뒤에 가려져 있던 '샤르도네(Chardonnay)' 품종의 잠재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뉴질랜드 샤르도네를 두고 "가장 과소평가된 품종"이라고 평가한다. 소비뇽 블랑의 명성을 이어받을 차세대 주자로 샤르도네를 꼽는 것이다.

와인 전문 매체 디캔터(Decanter)는 최근 '지금이야말로 뉴질랜드 샤르도네를 주목해야 할 때'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이 품종을 재평가했다. 2024년 뉴질랜드 와인협회 자료에 따르면, 샤르도네 재배 면적은 전체의 약 9%, 수출 비중은 2% 미만에 불과하다. 재배 면적 80%, 수출 비중 85%에 달하는 소비뇽 블랑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뉴질랜드 샤르도네가 완벽에 가까운 재배 조건과 정교해진 양조 기술을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품질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한다.

과거 뉴질랜드 샤르도네가 다소 무거운 스타일이었다면, 최근에는 섬세하고 긴장감 있는 구조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과실 본연의 순수함과 밝은 산도, 그리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복합미를 동시에 갖춘 와인으로 변모한 셈이다.

그래픽=정서희

특히 세계 최남단 와인 생산지인 뉴질랜드 남섬의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최근 샤르도네 생산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이곳은 고도가 높고 극단적인 일교차와 척박한 토양을 갖추고 있어, 포도가 응축된 풍미와 날카로운 산미를 동시에 지니기에 최적의 조건을 제공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와이너리 '다이시(Dicey)'는 센트럴 오타고의 배녹번(Bannockburn)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다. 1970년대 이 지역에서 포도밭을 조성한 로빈 다이시(Robin Dicey)에 이어, 그의 두 아들인 제임스(James)와 맷(Matt) 다이시 형제가 현재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다. 형인 제임스는 포도밭 관리와 재배를 책임지는 전문가로, 동생 맷은 와인 양조를 담당하는 메이커로 활약하고 있다.

다이시 형제의 철학은 확고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와인을 "시간과 장소를 포착해서 병에 넣는다. 매 수확철마다 그런 시도를 한다"고 설명한다. 또 "다이시(dicey)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잠재적으로 위험하다는 의미"라고도 했다. 인위적인 가공이나 과도한 기술적 개입을 지양하고, 배녹번의 자연 환경과 해당 빈티지의 기상 조건이 포도에 남긴 흔적을 그대로 병에 담아내겠다는 표현이다.

그 결과물이 '다이시 샤르도네'다. 모든 포도는 수확 후 발로 밟아 으깬 후 하룻밤 동안 방치해 풍미를 추출한다. 이후 송이째 압착해 자연 효모로 발효를 진행한다. 특히 젖산 발효를 거친 뒤 효모 찌꺼기를 저어주는 바토나주(Bâtonnage) 과정을 통해 샤르도네 특유의 크리미한 질감을 극대화한다.

코에서는 감귤류의 시트러스 향과 노란 복숭아, 잘 익은 파인애플 향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입안에서는 풍부한 과즙과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입체적인 질감이 느껴지며, 살아있는 산도가 와인에 밝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세련된 구조감과 긴 여운은 이 와인이 가진 품격을 대변한다. 다이시 샤르도네는 '2026 대한민국 주류대상' 신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 '베스트 오브 2026'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