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기 위해 무알코올 와인을 마시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무알코올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독립된 카테고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 고가 무알코올 와인도 등장
지난 15일(현지 시각)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주류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 전시장 곳곳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무알코올'이었다. 전시장 내에는 무·저알코올 와인과 대체 음료만을 모은 별도 전시관이 운영됐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주요 산지 생산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초고가 무알코올 와인도 전시회에 등장했다. 독일 와이너리 슐로스 요하네스베르그(Schloss Johannesburg)와 콜로네 눌(Kolonne Null)의 협업 제품이다. 슐로스 요하네스베르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리슬링 와이너리 중 하나이며, 콜로네 눌은 베를린에 기반을 둔 무알코올 와인 전문 브랜드다. 제품은 한 병에 100유로로, 국내에 수입된다면 최소 30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두 회사는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의 프리미엄 리슬링 빈티지 와인을 사용해 알코올을 제거한 제품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와인 평론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3점을 받았다. 과거에는 무알코올 와인을 포도 주스의 연장선으로 봤지만 이제는 독일 정통 와이너리도 무알코올을 와인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인정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사례다.
이렘 에렌 DipWSET(최상위 와인 전문가 자격증 보유자)은 "글로벌 주류 시장 분석 기관 IWSR에 따르면 작년 기준 무·저알코올 카테고리 시장 규모는 240억달러에 달한다. 무·저알코올 와인의 경우 2030년까지 연평균 9%의 고성장이 예상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2020~2025년 사이 전 세계 일반 와인 소비량은 10% 감소했다"며 "술을 아예 안 마시는 사람(17%)보다 상황에 따라 술 대신 무알코올을 선택하는 사람(43%)이 훨씬 많다"고 했다.
◇ EU, 무알코올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법제화
그동안 무알코올 와인의 가장 큰 장벽은 '맛'이었다.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와인 특유의 바디감과 타닌, 아로마가 손실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프로바인에서 공개된 기술력은 이러한 편견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에렌 DipWSET은 "과거에는 역삼투압 방식에 의존해 품질이 들쭉날쭉했지만, 이제는 여러 기술을 통해 와인의 정수를 그대로 담아낸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은 기술력과 브랜딩으로 무장한 무·저알코올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그동안 무·저알코올 카테고리는 맥주가 주도해 왔고, 그 뒤를 이어 스피리츠(위스키·보드카)와 혼합 음료들이 합류했다"라며 "와인은 조금 늦게 합류했지만, 토레스 와이너리 같은 곳은 투어 일정에 알코올 제거 설비 방문을 포함하는 등 3년 전만 해도 불가능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18일 새로운 규정을 발효했다. 무·저알코올 와인을 와인 카테고리 안에 정식으로 포함한 것이다. 그동안은 '알코올 제거 와인(De-alcoholized wine)'이라고 불렀으나 '무알코올 와인(No alcohol wine)', '저감 알코올 와인(Reduced alcohol wine)'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다. 무·저알코올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 "무알코올 와인 중 스파클링 비중 60%"
무·저알코올 시장을 이야기하면 스파클링도 빼놓을 수 없다. 스파클링은 무알코올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로 꼽힌다. 글로벌 럭셔리 그룹인 루이비통 모엣헤네시(LVMH)는 2년 전 프랑스의 프리미엄 무알코올 스파클링 와인 브랜드 '프렌치 블룸(French Bloom)'에 투자했고, 이제는 이를 그들의 가장 중요한 최상위 포트폴리오 일부로 보유하고 있다. 돔 페리뇽(Dom Perignon), 크룩(Krug) 같은 초고가 샴페인을 보유한 그룹이 무알코올을 럭셔리 반열에 올려놓은 셈이다.
헨켈 프레시넷(Henkel Freixenet)의 마티나 오브레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전체 무알코올 와인 시장에서 스파클링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며 "레드나 화이트 와인은 알코올 제거 시 바디감 손실이 크지만, 스파클링은 탄산의 청량감이 알코올의 타격감을 훌륭하게 대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매출의 12%가 이미 무알코올 라인업에서 나오고 있다"라며 "독일은 역사적으로 무알코올 스파클링 시장의 큰 축이었지만, 이제는 영국, 프랑스, 미국, 폴란드 등 독일 밖에서도 놀라운 성장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변화는 파인 다이닝 업계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스벤 와스너 셰프가 이끄는 스위스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메모리즈'는 '와인 페어링' 대신 '베버리지(음료) 페어링'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하기 시작했다. 페어링 코스의 30%를 무알코올 와인과 기능성 음료로 채우는 식이다. 과거에는 매콤한 아시아 음식에 당도가 있는 리슬링을 곁들였다면, 알코올을 제거한 레드 와인을 매칭하는 시도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프로바인은 주류 산업 종사자만 입장 가능한 세계 최대 규모의 B2B 주류 전문 전시회다. 비넥스포(Vinexpo), 빈이탈리(Vinitaly)와 함께 세계 3대 와인 엑스포로 꼽히며,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다. 최근에는 와인뿐 아니라 스피릿, 무알코올·저알코올 음료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주류 산업 전시회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전시회에는 전 세계 60개국, 4000여개 업체가 참여해 혁신적인 제품과 비전을 선보였다. 개최지는 독일이지만 참가사의 약 87%가 해외 기업으로 구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