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004370)이 화장품 개발 협력에 나섰다. 대표적인 라면 회사의 '뷰티 확장'이라는 점도 이례적이지만, 업계의 시선을 끈 건 '시점'이다. 오너가 3세 신상열 농심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된 직후 곧바로 나온 행보이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선 신 부사장 체제의 신사업 방향성을 제시한 신호탄으로 본다.

그래픽=손민균

26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최근 화장품 제조사 에프아이씨씨(FICC)와 협력해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라이필'의 콜라겐 원료를 활용한 화장품 연구·개발(R&D) 협력에 착수했다. 농심이 원료를 공급하고 파트너사가 제품화를 맡는 구조로, '먹는 콜라겐'에서 '바르는 콜라겐'으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신 부사장은 고(故) 신춘호 회장의 손자이자 신동원 회장의 장남이다. 올해 1월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미래사업실을 이끌면서 투자와 인수합병(M&A), 글로벌 사업 전략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농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공식적으로 합류했다.

그동안 신 부사장은 건강기능식품, 스마트팜 등 신사업 발굴을 추진해 왔다. 다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제한적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그의 사내이사 선임 이후 첫 행보가 무엇이 될지 주목해 온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이번에 공개된 협업 역시 신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나온 카드로 보인다. 단일 제품이 아니라 원료를 기반으로 사업군을 넓히는 전략으로, 기존 라면과 스낵 중심의 사업 구조를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는 해석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사내이사 선임 직후 4일 만에 '뷰티 사업 협업'을 공개한 점을 고려하면 신사업 방향을 외부에 보여주는 성격이 더 강한 게 사실"이라며 "그동안 분산돼 있던 신사업 중 특정 사업에 힘을 실으려는 신호로 읽힌다"고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라이필은 사내벤처에서 출발한 신사업으로 알고 있다"면서 "소재 기반 사업의 전환 가능성 차원에서 식품기업이 보유한 기능성 원료가 이너·뷰티 시장으로까지 확장이 가능한지를 가늠해 보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

농심의 이번 행보는 식품업계 전반에서 추진 중인 뷰티 사업 다각화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대표적으로 CJ제일제당(097950)의 건기식 자회사 CJ웰케어는 이너뷰티 전략을 유지하면서 기능성 소재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고, hy(옛 한국야쿠르트)는 유산균 기반 원료를 활용해 이너뷰티와 앰플·스킨케어 제품 등 뷰티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농심 관계자는 "이번 협업은 원료 기반 기술 협력 차원으로, 별도의 화장품 사업 진출로는 보기 어렵다"며 "라이필은 이미 별도 사업부로 운영 중인 브랜드다. 기존 사업의 연장선 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농심의 이번 뷰티 협업이 핵심 신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기능성 원료를 기반으로 한 사업 확장·다각화는 업계 전반에 걸친 흐름"이라면서도 "실제 사업으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브랜드와 유통, 수익 구조까지 갖춰야 하는 만큼, 신사업을 끌어가는 실행력이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건기식과 화장품은 산업 구조와 요구되는 역량이 전혀 다른 영역인 만큼, 식품사가 기능성 원료를 보유했다고 해서 곧바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건 아니다"라며 "다만 신성장 동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장 반응을 살피려는 의도가 반영된 행보로, 오너 3세 체제에서 신사업 방향성을 설정해 가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