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유럽은 거대한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권력을 잡은 프랑스 나폴레옹의 군대는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했고, 북부에서 중부까지 빠르게 세력을 넓혀갔다.

18세기 후반 프랑스군이 이탈리아 중부 마르키 지역을 지나던 때의 일이다. 포도밭을 가득 채운 황금빛 광경이 진격을 서두르던 병사들의 발길을 붙잡았다고 전해진다. 이 포도로 만든 와인을 맛본 병사들은 이를 '금처럼 빛나는 와인'이라 부르며 즐겼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이후 프랑스군이 이 와인을 병에 담아 가져가면서 더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오늘날 베르디키오로 알려진 마르케의 토착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다.

베르디키오는 이름 자체가 초록색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베르데(verde)'에서 유래했다. 상큼한 산미와 미네랄감을 지닌 품종으로,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 지역을 대표하는 화이트 와인용 포도다.

하지만 한때 베르디키오는 고급 와인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1960~1980년대에는 고대 로마 항아리를 본뜬 '암포라' 병에 담겨 판매되며 관광객을 위한 대중적인 식탁용 와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러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이후다. 일부 생산자들이 포도 수확량을 줄이고 포도밭의 개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양조 스타일을 바꾸면서 베르디키오가 단순한 데일리 와인이 아니라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을 갖춘 화이트라는 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래픽=손민균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생산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마니 론끼다. 1957년 설립된 이 와이너리는 마르케 지역을 대표하는 생산지다. 베르디키오와 몬테풀치아노 품종을 중심으로 와인을 생산해왔다. 현재는 창립자인 마시모 베르네티와 그의 아들 미켈레 베르네티가 함께 경영하고 있다.

우마니 론끼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18개 명문 와이너리만 참여하는 협회 그란디 마르끼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협회에는 안티노리, 가야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이너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란디 마르키는 우마니 론끼에 대해 "최상의 토양을 찾아 최첨단 양조 기술을 실험하고, 풍부한 포도 재배 유산을 바탕으로 와인의 관능적 특성을 극대화하는 생산자"라고 소개한다.

현재 우마니 론끼는 스텔리 디 예지, 코네로, 아브루초 등 세 지역에 걸쳐 약 210헥타르 규모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다. 모든 포도밭은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되며 연간 약 290만병의 와인을 생산한다. 20종이 넘는 다양한 와인을 선보이고 있으며 60개국 이상으로 수출되고 있다. 전체 생산량 가운데 약 70%가 해외 시장으로 판매된다.

우마니 론끼는 베르디키오의 품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대표적인 와인이 바로 '까살 디 쎄라(Casal di Serra)'다. 까살 디 쎄라는 '세라 언덕의 농가'라는 뜻이다. 1980년대 후반 화이트 와인으로는 이례적으로 싱글 빈야드 개념을 도입한 와인으로 꼽힌다. 특정 구역에서 수확한 포도만을 사용하고 품종 본연의 농축미를 강조하면서, 화이트 와인이면서도 비교적 긴 숙성 잠재력을 갖춘 스타일을 구현했다.

이 와인의 포도밭은 해발 약 200~350m의 언덕 지대에 있다. 석회질과 점토가 섞인 토양에서 포도가 재배된다. 포도나무 수령은 대체로 8~30년 정도이며, 수확은 당도와 산도의 균형을 고려해 9월 말에서 10월 초 사이 손으로 진행된다.

수확한 포도는 부드럽게 압착한 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약 16~18도의 온도로 발효된다. 이후 약 5개월 동안 효모와 함께 숙성해 질감과 복합미를 더한다. 젖산 발효는 일반적으로 진행하지 않아 신선한 산도를 유지하는 스타일이다.

까살 디 쎄라는 100% 베르디키오로 만들어진다. 코에서는 야생화의 강렬한 향기와 복숭아, 살구, 사과 같은 노란 과육 과일의 향이 느껴진다. 입에서는 신선함과 감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다. 오븐 또는 그릴에 구운 생선 요리, 구운 흰 살코기, 신선한 치즈와 잘 어울린다.

우마니 론끼는 이탈리아 와인 가이드 감베로 로쏘로부터 '2024년 올해의 와이너리'로 선정됐다. 또한 까살 디 쎄라 2022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가 발표한 '2024년 100대 와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이 와인은 국내에서도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구대륙 화이트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국내 수입사는 레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