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프랑스 왕 루이 9세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 이집트에서 패배해 카이로에 투옥됐다. 그는 몸값이 완납될 때까지 4년가량 억류된 후 석방됐다. 왕비 마거릿 드 프로방스는 왕의 석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상하고 정치적 노력을 기울였다. 마거릿 왕비는 왕이 없는 동안 왕국 내정을 돌보며 정치적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가 강인하고 지혜로운 여성으로 손꼽히는 이유다.

마거릿 왕비는 프로방스에서 나고 자랐다. 그 지역의 백작 라몽 베렝게르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방스의 라 롱드 레무르 인근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천연 샘물이 있다. 생 마거릿이라는 이름의 이 샘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생명력을 상징한다. 샘 바로 옆에 있는 와이너리 '세인트 마거릿 앙 프로방스(Sainte Marguerite en Provence)'도 왕비와 샘의 이름을 따 왔다. 물의 원천에서 비롯된 순수함과, 왕비가 상징하는 고귀함이 어우러진 이름이다.

세인트 마거릿 앙 프로방스는 1929년 앙드레 쉐비용이 설립했다. 작은 포도밭으로 출발했지만, 1955년 프로방스 크뤼 클라세(Cru Classé) 중 하나로 지정되며 명성을 얻었다. 현재 이 등급을 받은 포도원은 18곳뿐이다. 창립자 쉐비용이 세상을 떠난 뒤 와이너리는 한동안 프랑스 재단에 귀속됐으나, 1977년 파야드(Fayard) 가문이 인수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그래픽=손민균

브리지트와 장-피에르 파야드 부부는 여름휴가 중 이 지역을 방문했다가 아름다움에 매료돼 이곳을 인수했다. 당시 7헥타르에 불과하던 포도밭은 현재 200헥타르 규모로 확장됐다. 현재 파야드 부부의 자녀 중 올리비에와 엔조가 양조를 담당하고, 시골렌은 경영과 법률을, 라이오넬은 병과 라벨 디자인을 맡고 있다. 가족의 각기 다른 전문성이 결합한 결과, 샤또 세인트 마거릿은 2대에 걸쳐 프로방스 로제 와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포도밭의 절반 이상이 지중해 해안선과 맞닿아 있으며, 바다에서 불어오는 염기성 공기가 포도밭의 병해를 막고 수분 균형을 잡아 준다. 온화한 겨울과 낮은 강수량,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포도 재배에 이상적이다. 토양은 편암, 사암, 점토가 뒤섞여 배수가 잘된다. 이러한 환경이 단단한 구조감과 섬세한 산도를 동시에 지닌 포도를 길러낸다.

샤또 세인트 마거릿의 대표 라인업은 바로 '판타스티크(Fantastique)' 다. 이 중 판타스티크 로제(Fantastique Rosé)는 그르나슈(Grenache), 생소(Cinsault), 베르멘티노(Vermentino)를 블렌딩해 만든다. 그르나슈는 시트러스하고 강렬한 아로마와 섬세한 질감을, 베르멘티노는 배와 레몬, 자몽의 상큼함을 더한다.

와이너리는 100% 유기농과 비건 인증을 취득했다. 화학비료나 살충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수확한 포도는 껍질과 함께 저온 침용 후 압착된다. 이어 온도 조절 하에서 발효를 진행하고, 가장 품질이 뛰어난 발효조만 선별한다. 와인은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고운 효모 찌꺼기와 함께 숙성되며, 병입 전 정제와 여과 과정을 거친다.

잔을 들면 펄이 도는 핑크색에 황금빛이 반짝인다. 향은 흰 복숭아와 배, 리치, 패션프루트, 자몽이 어우러지며, 시트러스와 장미, 은은한 재스민 향이 입안에서 신선하게 피어난다. 여운은 길고 향긋하다.

이 와인은 버섯을 곁들인 가금류 요리, 그릴에 구운 붉은 육류, 생강과 후추를 곁들인 아시아 요리, 랍스터나 조개류 등 고급 해산물과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로제 와인 부문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페르노리카코리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