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SPC 산업재해와 관련해 "(SPC는) 이전에도 1000억원을 들여서 동일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조치하겠다고 했는데, 과연 했는지 제가 확인해 보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1000억원은 지난 2022년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 사고의 후속 조치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발표한 안전 경영 계획 예산이다.
SPC그룹은 올해 4월 말까지 관련 전체 예산의 약 92%를 집행했지만, 바로 다음 달 경기 시흥 SPC삼립(005610) 시화공장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가 재차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노후 설비와 시설을 전부 철거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1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SPC그룹이 2022년부터 올해 4월 말까지 투입한 안전 경영 예산은 총 916억8000만원이다. 세부 항목별로 보면 ▲안전 설비 확충 및 장비 안전성 강화 408억3000만원 ▲고강도 및 위험 작업 자동화 252억6000만원 ▲작업 환경 개선 204억4000만원 ▲기타 51억5000만원 등에 예산을 투입해 집행했다. 4월 말 기준 전체 예산의 91.68%가 집행된 상황이다. SPC그룹은 오는 9월까지 안전 경영 예산 1000억원 투자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4월까지 900억원 이상 안전 경영을 위해 예산을 투입했음에도 바로 다음 달인 5월 SPC그룹 계열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사망 사고가 재차 발생했다. 당시 50대 근로자 A씨는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이 이뤄지는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는 작업을 하던 중 기계에 상반신이 끼는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근로자가 소스 교반기(고체, 액체, 기체 등을 서로 섞거나 휘젓기 위해 쓰이는 기구)에 끼여 사망한 사고를 시작으로, 최근 3년간 SPC 계열 공장에서는 3건의 사망 사고와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는 572건에 달한다.
이어 지난 5월 안전사고 발생 후 SPC그룹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한 'SPC 안전 경영 혁신 방안 대국회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안전 설비 확충 및 고강도 위험 작업 자동화 등에 총 969억원을 투입했다.
SPC가 투입한 예산은 주로 커버·난간·센서 등 안전장치와 노후 기기를 교체하거나 CC(폐쇄회로)TV 설치 및 통로 확장 등 작업 환경 개선에 사용됐다. 특히 근골격계질환·끼임 등 작업 도중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시설을 고치고 장비를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SPC그룹 계열 공장에선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업계에서는 SPC가 생산하는 빵과 디저트 등 종류가 수백 가지인 만큼 공정 자동화에도 일부 작업은 사람이 설비에 직접 들어가야 하므로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또 유통·납품 기한 내 제품을 공급하고자 안전 매뉴얼을 일부 준수하지 못했을 가능성과 운영 공장 설비가 30년 이상 된 노후화 문제도 제기됐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안전 경영 명목으로 1000억원을 투자했지만 시설·설비 등 기존 생산 효율성에만 투자했을 뿐, 작업 방식을 바꾸는 등 산업 안전·보건을 위한 새로운 투자는 없었다"라며 "2인 1조 시스템 등 안전 매뉴얼에 따라 작업을 했다면 비극이 반복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찬오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명예교수는 "30년 이상 된 설비·시설을 고치는 것만으로는 사고 위험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다. 1000억원을 투자했다고는 하지만 다 부분적인 교체·보수 아니었나"라며 "노후 설비·시설을 전부 다 철거하고 안전 설계에 맞춰 새로 짓지 않으면 같은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SPC그룹 관계자는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안전 설비와 위험 작업 자동화 등에 예산을 투자하고 있지만, 계열사와 공장이 많은 탓에 미처 안전 설비를 설치하지 못한 곳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에 사고가 난 설비는 전부 철거하고 새로 안전 설비로 설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SPC그룹 계열사 공장은 총 27개다. 이 중 17개가 빵과 과자 등을 만드는 제조 공장이다.
SPC그룹은 위험 작업 자동화 공정을 도입하기 위한 시설을 설비·설치하고자 오는 2027년까지 총 624억원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이 중 543억원은 안전·자동화 등 시설 교체 및 설치에 사용된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추가로 투입되는 624억원의 실효성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1000억원 가까이 투자했음에도 사망 사고가 반복된 탓이다.
한편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지적한 생산직 야근을 8시간 이내로 제한해 '장시간 야간 근로'를 없애겠다며 전반적인 생산 시스템에 대한 전면 개혁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는 지난 25일 시화공장에서 진행한 '산업재해 근절 현장 노사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이 지적한 '주·야간 12시간 맞교대'를 개선한 것이다.
SPC그룹 관계자는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 '변화와 혁신 추진단'도 출범했고, SPC커미티(SPC그룹 계열사 대표 협의체)에도 '스마트 공장' 건립 권고안을 전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안전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