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외 사업 실적이 국내 식품 업계 희비를 가른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식품 업체들이 미국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예고한 탓에 미국 시장에서 국내 브랜드들이 인지도와 시장 장악력을 높이려면 현지 생산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케이(K)푸드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식품 업체들은 잇따라 미국 현지에 공장을 증설하고 있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은 미국에 처음으로 대규모 제빵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1억6000만달러(2339억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15만㎡(4만5000평) 부지에 신규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SPC그룹 해외 공장 중 최대 규모다. 현재 SPC는 북미 지역에 파리바게뜨 2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1000개 매장을 개설하겠다는 목표다.
대규모 현지 투자 결정은 파리바게뜨 아메리카 본부의 조직개편과 맞물려 진행됐다. 최근 파리바게뜨 아메리카 본부는 최고 책임자급 인사를 단행했다. 대런 팁튼(Darren Tipton)이 2021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가운데 닉 스카치오(Nick Scaccio) 최고운영관리자(COO), 캐시 샤브넷(Cathy Chavenet) 최고마케팅경영자(CMO), 에릭 걸킨(Eric Galkin) 최고공급망관리책임자(CSCO), 박세용(Saeyong Park) 최고재무책임자(CFO), 미셸 자그루프(Michelle Jagroop) 최고인사책임자(CHRO)를 선임했다.
뚜레쥬르를 운영하는 CJ푸드빌도 2030년까지 미국 내 뚜레쥬르 매장 1000호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CJ푸드빌은 조지아주 9만㎡(2만7200평) 부지에 5400만달러(790억원)를 투자해 미국 공장을 짓고 있다. 올해 하반기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에서 냉동생지, 케이크 등 베이커리 주요 제품을 연간 1억개 이상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미국 투자를 늘리는 것은 제과 업계뿐만이 아니다. 냉동만두 비비고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안착한 CJ제일제당은 이미 미국에 20개의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우스다코타 지역에 북미에서 가장 큰 아시안 푸드 공장을 짓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CJ제일제당은 2019년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하며 미국 전역에 갖춰진 물류 시설과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게 됐는데, 이번 신공장 건설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겠다는 목표다. 공장 부지는 축구장 80개 규모(57만5000㎡)로, 초기 투자액만 7000억원에 달한다. 2027년 완공이 목표다. 찐만두∙에그롤 생산라인과 폐수 처리 시설, 물류 센터 등이 들어선다.
기업들의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눈도장을 찍었다는 평가다. 허영인 SPC 회장은 오는 20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다. SPC가 미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후 일주일만이다. ‘한미동맹친선협회’가 허 회장이 그간 한미 경제 협력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고 판단해 미 측에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CJ제일제당의 신공장 착공식에는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가 직접 방문해 투자를 격려했다. 노엄 주지사는 트럼프 당선인이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한 인물로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식품 기업들은 내수 시장 포화 때문에 해외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영토 확장은 필수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K푸드플러스(농식품과 농업 전후방산업) 수출액은 130억3000만달러(19조원)로 전년 대비 6.1% 증가했다. 역대 최대치다. 대미 수출은 15억9290만달러(약 2조3000억원)로 전년 대비 21.2% 증가하며 수출 대상국 1위에 올랐다. 라면·냉동김밥 등이 SNS에서 인기를 끌었고, 야구·골프 등 대학과 연계한 K푸드 체험을 통해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신공장들은 대부분 수년 전 시작된 투자 프로젝트의 결실”이라며 “북미 지역에서 원재료 공급 인프라를 확보하고, 유통망을 효율적으로 가동하려는 조치”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