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누구나 금주(禁酒), 금연, 다이어트처럼 매년 새로운 다짐을 반복한다. 물론 며칠 만에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 설문 기관 SBRI에 따르면 새해 다짐을 하는 사람 가운데 8%만이 결심을 끝까지 지킨다고 한다. 10명 중 9명은 중도 포기하는 셈이다.

특히 무작정 1월 1일부터 단번에 술이나 담배를 끊겠다는 계획은 성공률이 더 낮다. 전문가들은 기간을 정해 서서히 음주나 흡연 빈도를 줄이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권했다.

‘드라이 재뉴어리(술 없는 1월·dry january)’는 2013년 영국에서 시작한 금주 캠페인이다. 새해 금주 결심을 오래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만 한 달이라도 참아보자는 의도로 영국 자선단체가 제안했다.

12년 전 초기에는 이 캠페인에 4000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미국 참여자만 7500만명에 달한다. 미국 내 전체 성인 2억6000만명 가운데 30% 정도다. 음주 가능 연령층 3분의 1이 참여할 만큼 대중화됐다.

3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은 국내에도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술 없는 1월을 도와주는 앱 ‘맑은 정신’은 누적 다운로드 수가 500만 회를 넘겼다. 주요 주류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지난해 연말부터 ‘드라이 재뉴어리를 시작합니다. 함께하실 분 구합니다’는 모집 글이 자주 올라오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올해 금주 1일 차 인증 글이 쏟아졌다.

금주를 시도해 본 성인들은 술을 끊기 가장 어려운 이유로 사교 활동을 꼽는다. 이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는 강박이 생긴다고 했다. 영국 성인 가운데 43%는 음주에 대한 압력을 피하고자 아예 약속 자체를 취소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러스트=정다운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 참가자들은 본인 금주 계획을 공유하고, 지원해 줄 주변인을 모으기 위해 인증 글을 올리는 경우가 잦다. 전문가들은 한 달간 금주 각오를 올리고, 주변 사람들이 실천을 독려한 참가자가 금주에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의학 전문가들은 이런 캠페인에 짧게라도 참여하면 건강에 큰 차이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영국 서섹스대 연구에 따르면 음주 빈도가 맥주 330밀리리터 2잔 기준 일주일에 3회 이상인 사람이 한 달 동안 금주했을 때 혈액 내 암 진행에 관한 특정 화학 물질 전달자가 빠르게 감소했다. 참가자들은 인슐린 저항성, 체중, 혈압 개선 효과도 봤다. 또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 참가자 10명 중 8명은 ‘술에 대한 자제력이 생겼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여러 이유로 금주가 어려운 이들에게 절주를 권하는 댐프 재뉴어리(축축한 1월·damp January)가 등장했다. 이름처럼 댐프 재뉴어리는 완전 금주 대신 양을 줄이거나 마시는 요일을 정하는 식으로 가능한 선에서 음주를 자제하는 캠페인이다.

의학 전문가들은 철저한 금주가 힘들거나, 실패로 인한 역(逆)효과에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은 술을 줄인다는 의의를 두고 절주하는 것만으로 장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글로벌 주류업계는 매년 불어나는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 참가자를 우려하고 있다. 동시에 무(無)알콜 주류 카테고리를 강화해 음주에 대한 죄책감을 줄이려는 시도를 병행 중이다.

거대 주류기업 디아지오는 2020년 무알콜 증류주 제조사 1호인 씨드립(Seedlip)을 인수했다. 인수 직후 디아지오는 드라이 재뉴어리 기간에 맞춰 영국 주요 도시에 이 회사 무알콜 주류를 ‘미래를 위한 음료’라고 선전했다. 페르노리카는 책임 음주를 강조하며 ‘음주 중 물을 더 마시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금주 전문앱 서니사이드 개발자 이언 앤더슨은 드라이 재뉴어리 참가자 분석 보고서에서 “드라이 재뉴어리는 단순히 ‘건강에 좋으니 술을 끊자’고 말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술이 지천인 환경에서 건전하게 술 마시는 기술을 알리는 캠페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참가자 가운데 83%는 폭음하는 날이 줄었고, 78%는 술을 더 잘 조절할 수 있었다“며 ”63%는 수면의 질이 나아졌고, 92%는 앞으로도 술 소비를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