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의 한 돈가스 무한 리필 식당. 이곳에선 1인당 1만2000원만 내면 돈가스와 밥을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36석 규모의 식당은 직장인으로 보이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테이블에 앉지 못한 대기 행렬이 바로 15명 이상 줄을 섰다.

비슷한 시각 서울 충정로 근처 즉석 떡볶이 무한 리필 식당도 만원사례를 이뤘다. 이곳에선 1만900원에 즉석 떡볶이를 마음대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이 식당을 찾은 회사원 윤모(38)씨는 “이 일대 식당 중에 이제 1만원 정도 가격의 메뉴가 있는 곳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데 여기는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뛰어나 자주 찾는다”라고 말했다.

외식업계에서는 팬데믹 기간 한때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겠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오마카세 메뉴들이 인기를 끌었다. 반면 올해 외식업계는 무한 리필, 초저가 같은 키워드가 대세였다. 2010년대 초까지 인기를 끌었던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물가와 외식업계 전반적인 비용 상승 탓이다.

31일 BC카드에 따르면 2020~2024년 국내 요식업종 가맹점에서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 카드 매출액은 연평균 1.1% 증가했다. 매출 건수는 1.6% 감소했다. 반면 고가 뷔페 업종은 매출액과 매출 건수가 연평균 8.9%, 10.2%씩 증가하면서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해만 놓고 보면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있었다. 시장조사업체 마크로밀 엠브레인 조사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 이용률은 팬데믹 끝 무렵이었던 2022년 상반기(1~6월) 평균에 비해 24% 더 많았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무한 리필 키워드 검색량은 성탄절이었던 지난 25일로 최근 1년 사이 가장 높은 검색량을 기록했다. 올해 1월보다 12월 검색량이 2배 이상 더 많았다.

그래픽=정서희

과거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무한 리필 식당 혹은 중저가 뷔페 레스토랑이 많은 인기를 누렸다. CJ푸드빌, 신세계푸드(031440), 이랜드이츠 같은 식품 대기업들도 각각 브랜드를 내놓고 잇따라 이 시장에 진출했다. 하지만 외식업계가 가성비 대신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강조하는 추세로 바뀌면서 여러 음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를 찾는 소비자는 줄었다.

그러나 올해 외식 물가가 치솟자 다시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들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갈비 무한 리필 전략으로 사세를 확장 중인 명륜진사갈비는 2022년 8월 브랜드 새 단장을 한 이후 지난해 1년 동안 신규 가맹점 138개를 출점했다. 올해까지 합치면 2년 동안 160개가 넘는 점포를 새로 열었다. 전체 점포 수는 600호점을 넘겼다. 명륜진사갈비는 고기 품질은 다른 돼지갈비 전문점에 크게 뒤지지 않지만, 120분 시간제한이 있다. 시간제한을 두면 방문객들 식사 시간이 짧아져, 회전율이 높아지고 매장 크기를 줄일 수 있다.

이랜드이츠가 운영하는 뷔페 애슐리퀸즈는 올해 상반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9% 증가했다. 애슐리퀸즈 매장 수 역시 2021년 65곳에서 올해 93곳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치킨 프랜차이즈 BBQ가 치킨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뷔페 매장을 전국 최초로 경기도 부천에 내면서 이 시장에 발을 들였다. 이 밖에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외식 가맹사업자로 등록한 브랜드를 보면 민물장어, 대창·곱창구이, 조개, 연어 등 새로운 메뉴가 등장하고 있다.

◇ 외식비·배달비 부담 커진 소비자들 몰려

외식업계에서는 외식비·배달비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무한 리필 식당과 중저가 뷔페를 찾고 있다고 본다. 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기준 올해 12월 대표 외식품목 8개 평균 가격은 지난해 1월보다 최대 30% 가까이 올랐다. 김밥은 2769원에서 3500원으로 26% 올랐다. 자장면도 5769원에서 7423원으로 28% 뛰었다. 삼겹살 1인분(200g)은 2만원을 넘겼다. 냉면도 1만원을 한참 웃돌았다.

외식업계 전문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이전 사례를 봤을 때, 무한 리필·뷔페 음식점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고물가 속에서도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고, 브랜드 정체성 확립을 위해 무한 리필·뷔페라도 현지 소비자에 맞춘 메뉴 개발, 지속 가능하고 친환경적인 운영 방안, 지역 친화 맞춤형 마케팅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우리보다 장기 불황을 먼저 겪은 일본에선 2000년대 초반 시작한 가성비 중심 소비가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며 “가성비 전략의 핵심은 무조건 가격을 낮추는 게 아니라, 제작비를 아껴서 제품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품질 향상에 있다는 점을 음식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