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이 좋아하던 아이돌에게 넙죽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그 아이돌들 덕분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렇게 한국을 찾는 것 아닙니까.”
24일 한 면세업계 임원의 말입니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로 오르면서(원화 가치 하락) 여행·면세업계에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사업 부문에서 희망을 엿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국내 관광객의 해외여행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지만 반대로 외국인의 국내 여행 수요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입니다. 30년 만의 엔저 현상(엔화 가치 하락)에 일본은 요즘 오버 투어리즘 문제까지 대두되는 분위기입니다. 일본 정부 관광국에 따르면 올 11월에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318만7000명이었습니다. 올해 누적 관광객 수는 3337만9900명입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따르면 일본 관광객은 이미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통계치를 크게 뛰어넘었습니다.
이는 엔화 가치가 떨어지자 일본으로 한국·중국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백화점엔 한·중 관광객의 오픈런(개점과 동시에 물건을 사는 것)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 레드라벨(일본 라이센스), 이세이미야케, 플리츠플리즈 등이 개점 때 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대표적인 인기 브랜드입니다. 일본 구매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A업체 대표는 “중국 리셀러나 관광객들이 물건을 모두 선점하다 보니 물건 확보가 쉽지 않다”면서 “물건 확보가 늦어진다는 공지를 수시로 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면세점 업계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환율 상승에 기준 환율을 올려잡으면서 외국인 관광객 입장에선 한국 화장품이나 패션 제품 등을 예전보다 싼 값에 살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이 선물로 많이 사는 정관장 홍삼정로얄 240g은 기존 181달러에서 175달러로 내려가고,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 윤조에센스 듀오(90ml)는 기존 158달러에서 152달러로 내려갑니다.
이는 신세계·롯데·신라면세점이 최근 국내 화장품, 패션·잡화, 식품 브랜드 등에 적용하는 기준환율을 기존 1350원에서 1400원으로 올린 데 따른 것입니다. 면세점에서 파는 국내 브랜드 상품은 제품 정상가에 고시 환율을 곱해서 면세 가격을 책정합니다. 예를 들어 기준환율이 1350원일 때 정상가가 1만원인 제품을 달러로 환산할 경우 기존에는 약 7.4달러에 면세가가 책정됐다면, 기준환율이 1400원으로 조정된 이후에는 7.1달러로 인하됩니다.
한국의 대외적인 이미지가 추락하지 않고, 천재지변이 일어나 관광 인프라가 쑥대밭이 되지 않는 한, 내년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야놀자리서치가 개발한 인공지능(AI) 모델은 2025년도 방한 관광객 수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7%가량 증가한 약 1873만명을 기록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미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상승에 따라 울상 짓는 곳들이 참 많습니다. 식품 회사들은 식자재를 수입해 오면서 한숨을 쉴 것이고, 이에 따라 소비자 물가도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환율 상승으로 웃는 곳도 있습니다. 과거엔 수출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관광 수입이 늘어난다는 점도 감안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그간 우리나라의 대외 이미지가 좋아졌고 관광 인프라도 많이 개선됐다”면서 “예전엔 환율이 오르면 울상만 지었는데 이젠 그래도 기댈 곳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한 면세업계 임원도 “우리나라 아이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관광하기 좋은 나라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한 것 같다. 사업적으로 희망을 찾아보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