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의 변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루쌀(품종명 바로미)로 만든 빵과 면이 나온 데 이어 음료도 나왔습니다. 쌀 공급 과잉에 대한 대책 중 하나입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푸드가 가루쌀과 현미유 등 식물성 원재료로 만든 우유 대체음료 ‘유아왓유잇 식물성 라이스 베이스드’가 최근 출시됐습니다.

9월 5일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4 대한민국 농업박람회를 찾은 관람객이 가루쌀 설명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맛에 대한 소비자 반응도 좋은 편입니다. 텁텁한 미숫가루라기보단 고소한 우유 같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지난 6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4 국제 식음료품평회에서 국제 우수 미각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소비자 반응이 좋은 만큼 판로를 넓혀가고 있다”면서 “편의점 등에서도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SPC삼립이 가루쌀을 원재료로 만든 ‘미각제빵소 식빵·휘낭시에’도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SPC삼립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가루쌀로 작년 8월 말 처음으로 식빵과 휘낭시에를 내놨는데 예상보다 빨리 빵이 팔려나갔습니다. 소비자 반응이 좋은 편이라 파리바게뜨와 SPC삼립은 올해도 가루쌀 빵을 만들어 출시할 계획입니다.

카레와 만두, 볶음면도 가루쌀로 나오고 있습니다. 농심은 별미볶음면 매콤찜닭맛을, 오뚜기는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만든 ‘비밀카레’를 출시했습니다. CJ제일제당도 가루쌀로 만든 ‘비비고 우리쌀 만두’를 선보였습니다.

식품업계가 다양한 가루쌀 상품을 내놓는 건 정부가 쌀 가공산업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루쌀에 대한 식품업계의 반응도 작년과 올해가 약간 다릅니다.

작년엔 ‘정부가 하라니까 합니다’라는 분위기가 많았다면 올해는 ‘소비자도 좋아하니 틈새 상품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반응이 많습니다. 작년과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가루쌀 제품개발 지원사업 수행을 위해 몇몇 업체를 선정했는데, 작년에 참여했던 기업이 다시 지원하고 새로운 기업도 지원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그래픽=정서희

하지만 최근 있었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감장 분위기는 예년과 같았습니다. 가루쌀을 둘러싼 지적이 쏟아졌습니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반 쌀과 가루쌀 재배 농가의 소득을 따져보면 직불금을 제외할 경우 가루쌀의 소득이 감소한다”며 “가공 수율도 일반쌀보다 5% 떨어지고, 소비자 판매와 재고 관리 비용도 더 들어간다. 고비용 구조로 정책의 실효성이 있는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가루쌀 특허등록증에 명시된 개발 목적은 ‘쌀가공품 확대’이지 ‘밀가루 대체’라는 건 전혀 없다”면서 “제대로 된 정책이라면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지부터 살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농촌진흥청 연구결과에 따르면, 가루쌀로 식빵을 만들어보니 가루쌀의 함량이 증가할수록 식빵의 부피는 작아지고, 가루쌀은 글루텐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반죽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적혀있습니다.

이런 지적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닙니다. 가루쌀이 자생적인 시장을 만들기 위해선 갈 길이 멉니다. 일단 비쌉니다. 가루쌀은 1kg당 2000원대 수준인데 수입 밀가루는 1kg당 1000원대 수준입니다. 또 가공방법에 대한 연구가 더 축적돼야 쌀 가공식품 시장에서 가루쌀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정감사장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가루쌀을 보면서 이를 정쟁으로만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가루쌀이 정답이 아니더라도 남아도는 쌀 문제와 관련해 뭐라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1인당 쌀 소비량은 꾸준히 줄어드는데 생산량 감소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쌀들은 어딘가에 쌓여만 가고 있고 지난해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2조원가량을 사용했습니다. 가루쌀이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무엇이라도 대안을 만들어야 2조원을 더 의미있는 곳에 쓸 수 있습니다.

근본적인 지적은 여전히 나오지 않는다며 한숨 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감에서 가루쌀보다는 양곡관리법에 대한 논의가 더 나왔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이 일정 수준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식품업계 교수는 “정부가 남아도는 쌀을 매수해 주면 농가 입장에서 굳이 쌀 작농을 줄일 이유가 있겠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농민들 마음을 건드릴까 봐, 농민 표심을 잃을까 봐 말하지 않습니다. 양곡법까지 시행하면 쌀 시장은 바뀔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가루쌀도 대안이 아닐 수 있지요. 그런데 양곡법은 두고 가루쌀의 적정성만 논의하는 게 맞나요”라고 했습니다.

쌀 자체의 생산이 과잉이라서 나온 고육지책이 가루쌀인데 가루쌀을 둘러싼 지적만 이어지는 요즘, 딱 어울리는 말은 ‘견지망월(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달을 잊어버리고 손가락을 본다)’인 것 같습니다. 모두 ‘진짜 달’을 바라보며 논의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