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이 종합식품그룹 도약을 선언하면서 가정간편식(HMR) 사업 브랜드 ‘더미식’ 등을 운영하는 하림산업에 계열사 자금을 쏟아 넣고 있다. 하지만 주력 상품인 즉석밥과 라면 매출이 역성장하는 등 고전하고 있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하림산업은 하림지주의 100% 자회사로 지난 2012년 설립된 식품 전문 기업이다. 지난 2021년 10월 가정간편식을 중심으로 한 더미식 브랜드를 출시했다. 더미식은 ‘오징어 게임’ 주연 배우 이정재를 광고 모델로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더미식 라면을 첫 제품으로, 즉석밥과 짜장면 등의 가정간편식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서 모델들이 하림의 더미식 냉동 국물요리 7종을 선보이고 있다. /뉴스1

하림은 더미식을 키우기 위해 공격적인 공장 증설과 제품 확장 등 투자에 나섰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지난 16일 서울 성수동 용가리 치킨 25주년 기념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더미식 브랜드는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시장에 자리 잡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라인도 증설해 생산량을 늘려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농심이나 삼양, CJ 등 경쟁사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품질이나 맛은 월등하지 않아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것이다. 신제품 출시마다 김홍국 회장이 직접 나서 홍보하는 등 사활을 걸었으나 3년이 지나도록 존재감이 없다는 반응이다.

더미식 장인라면 담백한맛·얼큰한맛(4개입)은 대형마트에서 7800원에 판매된다. 농심의 프리미엄 라면인 신라면 더블랙인 4개 6150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약 25% 높다.

더미식의 부진은 주력상품의 매출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하림산업의 올해 상반기 식품사업 매출(398억원) 중 냉동식품과 탕류 매출은 증가했지만 주력 상품이자 시장 규모가 큰 라면과 즉석밥은 매출이 줄었다.

더미식 라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5.3% 감소한 72억원, 즉석밥 매출은 17.3% 감소한 67억원을 기록했다. 식품산업통계정보(FIS) 소매점 판매 통계에서도 더미식 장인라면은 작년 기준 국내 시장점유율 ‘톱10′ 순위권 밖이다.

그래픽=정서희

이에 하림산업의 적자 폭도 커지고 있다. 하림산업은 2021년 매출 217억원을 거뒀다. 같은기간 영업손실은 589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에도 영업손실 868억원으로 적자가 불어났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096억원으로 더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60.6%에서 110.6%, 124%로 상승했다.

불어난 영업손실 부담은 하림산업 지분 100%를 보유한 하림지주가 떠안고 있다. 하림지주는 지난해 1000억원, 올해 초 300억원 등 운영비 명목으로 하림산업에 총 1300억원을 출자했다.

그룹차원의 자금 수혈도 꾸준하다. 김홍국 회장의 고집에 동원된 계열사 엔에스쇼핑은 2021년과 2022년 하림산업에 각각 300억, 600억원을 유상증자했다. 이달 4일엔 280억원을 시설투자 자금 명목으로 대여하기로 했다. 지난 3년 동안 사실상 2000억원 넘는 자금이 투입된 것이다.

업계 일각에선 김 회장이 뚜렷한 전략 수정 없이 투자를 지속하는 것이 하림그룹 전체의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정 간편식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고가 정책을 펼친 것이 눈덩이 영업손실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하림그룹이 식품과 HMR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지만, 다른 경쟁사와 비교해 제품의 맛이나 가격 면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다”며 “제품 홍보 비용을 늘리고 있음에도 시장에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