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남성의 모습. /픽사베이

국내에서 담배로 인정되지 않는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액상형 담배는 청소년의 흡연 시작을 앞당기는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한국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로 포함한 것만 담배로 인정하고 있어 규제 공백 틈을 타 빠르게 번지는 양상이다.

25일 담배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담배회사 브리티시아메리칸토바코(BAT)는 오는 11월 합성 니코틴을 이용한 액상형 전자담배 신제품을 출시한다. 이 회사가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출시하는 곳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업계에선 액상형 전자담배가 담배사업법 규제를 받지 않는 한국의 특수성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법상 담배가 아니라 일반 담배, 궐련형 전자담배와 달리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청소년도 성인 명의를 도용해 구입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세금도 부과되지 않아 일반 담배보다 싸게 유통된다. 또 과일향, 박하향 등이 첨가된 가향 담배에 담배 모양이 아닌 외형이 많아 청소년들에겐 ‘흡연의 관문’ 역할을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궐련(일반 담배)을 통한 청소년(중1~고3) 흡연율은 2020년 4.4%에서 지난해 4.2%로 변화가 거의 없었지만, 액상형 전자 담배 사용률은 1.9%에서 3.1%로 상승했다. 2019~2023년 청소년 흡연자 3명 중 1명(32%)은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을 시작했다. 액상형 전자 담배로 흡연에 들어선 청소년의 60.3%는 현재 주로 일반 궐련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회용 액상형 전자담배는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도 지목된다. 액상형 전자담배에는 플라스틱과 리튬 건전지(배터리), 금속, 화학물질 등이 들어간다. 폐건전지는 일반 쓰레기로 배출 시 화재의 위험이 있어 전용 수거함에 버리도록 권고되지만, 액상형 전자담배는 폐기 기준이 없어 건전지를 분리하지 않은 채 일반 쓰레기통에 버려져 환경 오염 및 화재 위험을 초래한다.

꽁초만 버리는 일반 담배보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폐기물이 더 많지만, 규제가 없다 보니 환경부담금도 내지 않는다. 환경부는 2015년부터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 12조(폐기물부담금)에 따라 담배에 폐기물부담금을 징수하고 있다. 일반 담배는 20개비당, 전자담배는 20카트리지당 24.4원의 폐기물부담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합성 니코틴이 들어간 액상형 전자담배는 규제 대상이 아니라 폐기물 부담금을 내지 않는다. 다만, 천연 니코틴을 쓰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용량에 상관없이 개당 1.2원만을 부과한다. 일반 연초 담배 한 갑의 5% 수준이다.

한 담배업체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의 부작용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담배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면서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를 담배로 인정하고, 역차별 상태인 폐기물 부담금 제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 해외 국가들은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선 대부분의 일회용 액상 전자담배 제품의 상업적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 프랑스도 일회용 전자담배 판매 금지 법안을 상원 의회에서 통과시켰고, 호주도 해당 제품 수입을 금지했다.

영국의 경우 환경부가 나서 일회용 액상 담배의 환경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3월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은 청소년 흡연과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6년 10월부터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자 국회는 관련 법 개정에 나선 모습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제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담배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8건이다.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개정안을 내놓았다. 이들 개정안에는 담배의 정의를 ‘연초 및 니코틴 사용’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공통으로 담겼다.

정부는 합성 니코틴의 유해성을 먼저 판단한 뒤 관련 규제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보건당국은 합성 니코틴의 유해성을 판단하는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