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더위는 역대급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1994년에 기록했던 각종 기록을 줄줄이 새로 썼기 때문입니다. 6~8월 역대 여름철 평균기온 순위는 단연 올해가 1등이었습니다. 9월 폭염도 다르지 않습니다. 추석을 앞두고도 유례없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더위 덕분에 소비자는 깜짝 할인 대전을 만나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최근 대형 마트들이 앞다퉈 참전했던 소위 ‘꽃게 대전’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꽃게 가격은 100g당 790원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지난달 20일 꽃게 금어기 종료 직후 판매한 가을 햇꽃게 판매가격으로는 최근 5년 새 가장 저렴합니다.
이렇게 가격이 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대형마트를 필두로 한 온·오프라인 유통업계가 경쟁을 벌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업 상황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꽃게 생산량은 지난 2018년 1만1770톤(t)에서 작년 2만7150t으로 130.7% 증가했습니다. 이는 꽃게가 수온이 높을수록 생육 활동이 활발해지는 난류성 어종인 덕입니다. 한마디로 날이 더워지고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꽃게에겐 살기 좋은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하지만 어촌 다른 곳에선 울상을 짓고 있습니다. 가을 하면 유명한 전어가 대표적입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전어의 최근 ㎏당 도매가가 2만5000원대를 기록했습니다. 예년 도매가가 1만~1만20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비싸진 것입니다.
이는 전어도 저수온에서 어군을 형성하는 탓입니다. 수온이 너무 높아지자 우리나라 해역에선 전어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습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부른다’는 가을 전어인데, 가을 전어가 집을 나가버린 형국입니다.
한치도 ‘금(金)치’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치는 여름철 별미로 꼽히고 6~9월까지 한치물회 등 별미를 즐길 수 있는 품목입니다. 그런데 수온이 오르면서 한치 생산량이 급감했습니다. 올 여름엔 제주도에서조차 한치를 못 즐겼다고 합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탓입니다. 활한치 가격 기준으로 예년 대비 3배가량 값이 올랐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기준 제주 지역 한치(활어·선어) 어획량은 55t으로 전년 동기 93t과 비교해 40.9%(38t) 줄었습니다. 한치에게 가장 좋은 최적 수온은 24도 정도인데 제주 바다 기온이 평년보다 2~3도 높은 것이 영향을 줬습니다. 더운 바닷물이 한치에겐 쥐약이었던 셈입니다.
오징어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한국의 살오징어 어획량은 최근 10년 새 76% 감소했습니다. 2013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살오징어 어획량은 15만4555t 가량이었는데 2022년 기준으로는 3만6549t 가량만 잡히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오징어 가격은 예년 대비 20% 정도 올랐습니다. 오징어가 살기 좋은 수온은 15~20도 수준인데 동해안의 수온이 30도까지 오르면서 생육에 영향을 줬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해수 온도가 지속적으로 오르면 앞으로 수산물의 종류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꽃게와 같은 난류성 어종 중심으로 많이 나고 덕분에 그런 수산물만 가격이 내려가는 상황이 계속 펼쳐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밥상 풍경도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추석을 맞이해 차리는 차례상의 모습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요.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이 국산 수산물의 구성을 속속 바꾸고 있는 요즘입니다. 갑자기 부담 없이 싸게 살 수 있었던 가을 햇꽃게를 보면서 한 번쯤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