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그저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 아니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돈보다 시간을 더 쓴다. 공간 자체를 즐기러 간다.

커피가 일상인 시대지만, 역설적으로 독특한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고 있다. 뻔한 카페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과 색다른 체험을 내세운 매장 역시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스타벅스는 자타공인 국내 최대 커피 프랜차이즈다. 국내 점포 수가 지난해 말 기준 총 1893개에 달한다. 스타벅스 글로벌 홈페이지 기준 미국(1만6446개)과 중국(6975개), 일본(1901개)에 이어 전 세계 4위다. 중국과 일본 인구가 각각 우리나라 28배, 3배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인구 당 매장 수는 미국 바로 다음 수준이다.

스타벅스는 창립 초기 ‘커피가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철학을 앞세웠다. ‘스타벅스의 아버지’ 하워드 슐츠 전(前) 회장은 감미로운 음악이 흐르는 안락한 공간에서 숙련된 바리스타가 만든 맛과 향이 좋은 커피를 즐기는 경험이 스타벅스가 성공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타벅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이런 매력은 빛이 바랬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무 소재와 짙은 초록빛을 강조한 인테리어에 스타벅스를 상징하는 사이렌 로고나 글자가 곳곳에 새겨져 있다. 매장 곳곳 콘센트 주변에는 노트북을 충전하면서 공부하는, 이른바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무리)이 눈에 띈다.

넉넉한 콘센트와 빠른 와이파이는 스타벅스가 1997년 국내에 상륙한 이후 수많은 경쟁 카페를 제친 주된 요인이었다. 다만 그 편리함 탓에 스타벅스는 익숙함을 얻고 특별함을 놓쳤다.

‘스페셜 스토어’는 스타벅스가 특별함을 내세우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카페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스타벅스 대신 모두에게 새로운 스타벅스를 추구한다. 독특한 카페에서 한발 나아가 해당 지역 역사나 문화를 녹인 공간을 선보인다.

서울 중구 장충동 스타벅스 장충라운지R 모습. /스타벅스 코리아 제공

11일 스타벅스 코리아가 서울시 중구에 연 장충라운지R점은 국내 10번째 스페셜 스토어다. 한적한 장충동 골목길 한 켠, 1960년대 지어진 2층 저택을 카페로 새로 단장했다.

매장 정문을 들어서면 ‘당신의 커피 여행이 시작하는 곳’이라는 큰 표지판이 보인다. 다른 스타벅스와 달리 이 매장은 화살표를 그대로 따라가야 주문대가 나온다.

정문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니 곧 지하 차고(車庫)가 나왔다. 차고 벽면에는 그래픽 아티스트들이 그린 커피 그림이 놓였다. 입구부터 누군가 모르는 사람 집에 처음 초대받은 생경함이 강하게 들었다.

이내 계단을 따라 일 층으로 올라갔다. 저택에는 지난 60년 동안 쌓인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1층에서 2층 계단 사이 놓인 샹들리에는 1980년대에나 볼 법한 고전적인 디자인을 자랑했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1960년대 건축물에 그대로 남겨진 초인종, 벽난로, 계단, 조명을 활용했다”고 했다.

매장 내 의자 가운데 상당수는 1960년대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분위기를 살렸다. 미드 센추리 모던이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0~1960년대에 걸쳐 새로운 디자인 운동이 꽃 피던 시기다. 전쟁 이후 유럽과 미국은 전과는 다른 삶을 추구했다. 디자이너들도 현대적 삶에 맞춰 의자나 책장 같은 일상 가구들을 새로운 소재로 디자인했다.

이날 1층에 놓여진 의자 중 하나는 미드 센추리 모던을 상징하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LC1′이었다. 이 의자는 가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으로 꼽힌다. 현재 진품은 의자 1개에 중고가 200만~300만원을 호가한다.

스타벅스에 따르면 장충라운지R점은 믹솔로지 바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매장이다.

믹솔로지는 믹스(Mix·혼합)와 테크놀로지(Technology·기술)를 합성한 단어다. 장충라운지R점 1층 매장에 별도로 마련한 믹솔로지 바에서는 숙련된 바텐더가 칵테일 같은 주류 서비스를 제공한다. 앞서 해외 매장들이 커피 기반 칵테일을 선보였듯, 이곳에서도 에스프레소 마티니나 라떼 위스키 마티니, 시트러스 콜드브루 마티니처럼 커피를 활용한 칵테일 음료 11종을 맛볼 수 있다.

그래픽=손민균

다만 가격은 높은 편이다. 이곳에서만 파는 버번 위스키 크림 콜드브루 같은 경우 1잔에 2만3900원이다. 시그니처 칵테일로 선정한 딸기 레몬 보드카 블렌디드 역시 2만3900원에 판매한다. 어지간한 특급 호텔 바에서 파는 칵테일 가격을 웃돈다. 스타벅스가 미국 뉴욕에서 운영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리저브 매장 믹솔로지 바 가격과 비슷한 수준이다.

동시에 스타벅스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커피 메뉴로 ‘에스프레소 플라이트’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플라이트는 리저브 에스프레소 샷에 초콜릿 파우더와 프렌치 바닐라 크림, 제주팔삭 셔벗을 곁들인 음료 3종을 한데 모아 만들었다. 가격은 1만5000원이다.

스타벅스는 이를 특별한 장소에 고유한 정체성을 더하는 과정으로 여겼다. 앞으로도 더제주송당파크R점과 더북한강R점, 이번에 연 장충라운지R점에서 프리미엄 커피를 즐기는 소비자에게 가격에 맞는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홍성욱 스타벅스 점포개발 담당은 “장충라운지R점은 스타벅스가 가진 커피 헤리티지(유산)를 즐기라는 의도로 기획한 곳”이라며 “스타벅스는 앞으로도 다양한 콘셉트 매장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