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4층. 개점 직후라 전체적으로 한산한데 유독 일본 의류 브랜드 플리츠플리즈(Pleats Please·대표적인 주름 옷 브랜드) 매장만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개점하고 5분이 지나 도착했더니 받은 대기표는 59번. 매장에 들어가려면 약 150분이 걸린다고 했다. 매장 직원은 점심 이후에나 매장에 들어갈 수 있으니 카카오톡 연락을 받으면 다시 오라고 안내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매장 앞을 서성였다.

이 매장에 이렇게 사람이 몰린 이유는 9월 플리츠플리즈의 신상품이 들어오는 날이라서다. 플리츠플리즈는 매달 몇 점 안 되는 신상품을 내놓기 때문에 오픈런(개점과 동시에 뛰어가서 물건을 사는 것)을 해야만 살 수 있다. 한 사람당 살 수 있는 옷도 딱 다섯 벌. 매장 직원은 “리셀러(물건에 웃돈을 받고 되파는 사람들)들이 와서 웃돈을 받고 파니 진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5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의 플리츠 플리즈 매장 앞 전경/연지연 기자

◇매년 10~20%씩 매출 늘어나는 플리츠츨리즈

6일 플리츠플리즈를 수입하는 삼성물산에 따르면 최근 3년새 플리츠플리즈의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플리츠플리즈의 매출은 올 들어 8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5%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플리츠플리즈의 상위 브랜드격인 이세이미야케는 25%가량 늘었다. 플리츠플리즈는 2022년 타계한 일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브랜드인데, 옷 전체가 얇은 주름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다.

두 브랜드는 2019년 이후 한동안 있었던 일본 상품 불매 운동도 사실상 빗겨갔다. 2019년엔 일부 구매대행 개인사업자들 중심으로 “불매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추가 사입은 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지속되지 못했다. 구매 문의가 꾸준히 들어와서다.

실제로 일본 상품 불매운동으로 일본산 맥주는 2022년 3분기부터야 살아날 기미를 보인 반면 플리츠플리즈와 이세이미야케는 2021년 이후 꾸준히 매출이 늘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일본 브랜드였지만 마니아층이 탄탄했고 최근엔 이 브랜드를 찾는 소비자가 더 많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플리츠플리즈의 별칭은 ‘할머니 옷’이었다. ‘플리츠(Pleats)’가 주름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만큼 옷 전체가 얇은 주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에서 볼 법한 펑퍼짐한 느낌이 할머니를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어느새 ‘사모님 옷’으로 자리 잡았다. 몸에 딱 달라붙지 않는 펑퍼짐한 디자인은 우아하다는 평가를, 특유의 광택감은 수수한 듯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부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최근 3년새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올 들어 수입 물량을 20%가량 늘렸는데도 공개 당일 품절이 되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매달 다른 신제품에 실용성 더한 옷

플리츠플리즈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실용적이라서다. 편하게 입다가 더러워지면 세탁하기가 쉽다. 고급 의류는 보통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옷은 물빨래가 가능하다. 또 구김이 가지 않고 가볍다. 여행을 좋아하는 오승연(39·강남구)씨는 “짐을 쌀 때 이 옷만한 것이 없다”면서 “가볍고 구김이 가지 않고 빨래도 쉽다”면서 “색감도 예뻐서 여행사진이 잘 나온다”고 했다.

매달 다양한 신제품이 나오는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다. ‘하늘 아래 같은 플리츠플리즈는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색상과 디자인이 다르다. 이날 다섯 벌의 옷을 산 김주희(48)씨는 “다양하게 믹스앤매치가 가능하다. 겹쳐 입었을 때마다 색다른 느낌을 낼 수 있어서 좋다”면서 “집업 가디건을 사서 뒤집어 입으면 블라우스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옷은 플리츠플리즈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구하기 어려워지니 더 품귀 현상을 보이는 점도 있다. 최근엔 일본 현지에서 구매대행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아 국내 백화점 등지에서 사겠다는 사람이 늘었다. 올 상반기 엔화 약세 현상을 보이고 중국에서도 두 브랜드 옷이 인기를 끌면서 중국 보따리상이 물량을 많이 확보해가는 경우가 늘었다.

일본 한큐백화점의 플리츠플리즈 매장은 오전에만 물건이 있고 오후엔 텅텅 비어있을 때가 더 많을 정도다. 블로그를 통해 구매대행을 하는 김모씨는 “중국 상인들과 경쟁해야 해서 수량 확보가 비상이 걸렸다”면서 “올해 들어 특히 그렇다”고 했다.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매장. /이세이미야케 홈페이지

◇“이렇게 비싼데 실용적?” 가격은 국내 브랜드 2배 이상

다만 가격은 비싼 편이다. 원피스 한 벌에 70만~80만원 수준이고 스커트나 가디건, 바지도 50만원 중반대다. 비슷한 느낌이 나는 소재로 옷을 만드는 브랜드도 여럿이다. 국내 브랜드는 플리츠플리즈 가격의 절반 수준에 옷을 팔고 있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 옷도 충분히 예쁘고 품질이 좋지만 플리츠 소재의 옷을 가장 먼저 자리잡게 했다는 점이 플리츠플리즈의 위상을 만들었다”면서 “사실 비싼데 실용적이란 말은 모순이 있고, 꾸민 듯 안 꾸민 척, 편하게 입은 척 꾸며 입고 나갈 수 있다는 점, 가격으로서 어느 정도의 품위를 증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