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산업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 듣기가 귀해져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 197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장 분유시장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링크에 따르면 2021년 689억100만원 규모였던 분유 시장은 2023년 520억2600만원으로 3년 새 24%가량 줄었다.

그런데 분유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시장이 있다. 바로 이유식 시장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조사에 따르면 2015년 680억원이던 간편 영유아식 시장은 2020년 1671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2025년에는 3330억원 수준으로 시장이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유식이란 생후 5~6개월 이후 영·유아기의 아기들이 젖을 떼고 식사에 익숙해지기 위해 먹는 음식이다. 저출생 기조엔 영·유아가 모두 적을 수밖에 없는데 분유시장과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유식 시장이 커지고 있는 걸까.

그래픽=손민균

◇ 대형마트, 이유식 매출 늘었다

3일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에 따르면 이유식 매출이 늘고 있다. 2023년 홈플러스에서 판매된 이유식 매출액은 전년 대비 17%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는 15.0%, 이마트는 12.7%가량 늘었다. 유통업계에서는 쿠팡과 같은 온라인 플랫폼이나 이유식 업체에서 운영하는 자사몰에서 판매된 것까지 감안하면 이유식을 사려는 수요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이유식은 주로 육류가 함유된 상품이었다. 매일유업의 맘마밀(표고버섯과 소고기·아스파라가스 닭가슴살), 남양유업의 아이꼬야 맘스쿠킹고기배추전골아기밥(140g), 베베쿡 한우미역국 진밥, 엘빈즈 이지밀 한우당근무아기밥 등이 공통적으로 많이 팔린 이유식으로 꼽혔다.

이유식을 구매하는 영유아 보호자가 늘어나자, 대형마트도 이들을 잡아두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롯데마트는 베이비본죽과 산골이유식의 실온 이유식 ‘아기의 계절’을 단독으로 판매하고 있다.

상시로 할인된 가격에 상품을 살 수 있도록 전략을 짠 마트도 있다. 이마트는 이유식과 같은 유아용품 구매가 반복적이라는 점을 감안해 ‘맘키즈 클럽’을 만들었다. 맘키즈 클럽에 무료가입을 하면 늘 할인된 가격에 이유식을 살 수 있다. 9월에는 특정 회사의 이유식 2개를 사면 50%를 할인해 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8월 29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킨텍스 미베 베이비페어&유아교육전'./뉴스1

◇ 시판 이유식 찾는 부모 늘어난 이유 세 가지

요즘 같은 저출생 시대에 이유식 매출이 늘어나는 이유는 뭘까. 유통업계에서는 세 가지 이유로 이유식 시장이 커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단 부모들의 육아 철학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내 아이의 첫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니면 성의 없다는 평가도 쉽게 받았다. 아이를 업고 안은 채로 부모가 힘들어도 이유식을 직접 만들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엔 그렇지 않다.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용어가 만연해졌다. 행복한 육아를 위해선 적절한 육아용품을 구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졌다는 뜻이다. 이유식을 만드는 시간을 쓰지 말고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는 시간을 갖는 게 낫다는 의견도 많다.

주건우 이마트 유제품 카테고리 바이어는 “단순히 맞벌이 부부가 늘어서 이유식을 사는 것은 아니고 행복한 육아를 위해서 시판 이유식을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시판 이유식을 사서 먹이는 편이 더 경제적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9개월 아기 기준으로 고기와 버섯이 많이 들어간 시판 이유식 상품은 100g에 2980원~3300원 수준. 이유식을 직접 만들려고 유기농 표고버섯 200g을 사면 약 4980원, 한우 1+등급 양지 국거리용 300g을 사면 1만9000원대다.

김진아 순수본 영유아식본부 본부장은 “이렇게 식자재를 사면 표고버섯 한우 이유식만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식자재 가격으로 시판 이유식을 사면 더 다양한 식자재를 아이에게 노출할 수 있다”고 했다.

영양분 측면에서도 시판 이유식이 더 나을 때도 있다. 시판 이유식 회사에서 제공하는 식단표는 영양성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짜는 경우가 많아서다. 매일아시아모유연구소는 “집에서 이유식을 만들 때는 조리할 때 영양소가 손실되곤 하지만 시판 이유식은 이를 보강하므로 고른 영양소의 공급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픽=손민균

◇ “당분간 이유식 시장 더 커진다”

이유식 시장은 당분간 그 규모가 커질 것이란 전망도 많다. 이유식을 사 먹여도 괜찮다는 소비층이 늘어나고 있지만 영·유아용품의 가장 큰 경쟁자가 시장에 들어올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영·유아용품 시장에서 가장 큰 경쟁자는 바로 수입산이다. 외산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프리미엄인 경우가 많아 아이를 정성껏 키우고 싶은 부모의 선택을 받기 쉽다.

분유가 대표적이다. 국내 분유 기업들은 안 그래도 시장이 줄어드는데 수입 분유의 공습을 받으면서 더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조제분유 수입액은 8317만달러였지만 지난해엔 9676만달러까지 늘었다. 10년 전 1~2%에 불과했던 수입 분유 매출은 국내 전체 시장에서 20%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이유식 시장은 다르다. 이유식만큼은 무첨가나 유기농을 선호하는데 이는 수입산 이유식이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어서다. 대표적으로 해외 이유식 브랜드 거버는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가 2015년에 재진입하고도 2022년 하반기에 운영을 중단했다.

이유식 시장에서 기회를 본 국내 업체들은 속속 기회를 엿보고 있다. 초록마을은 작년 8월 ‘초록베베’를 선보이며 유기농·친환경 영유아식 시장에 들어왔다. 매일유업은 올해 초 ‘리케’라는 상표를 새로 출원했다. 영·유아식 강화를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