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에 하자가 있거나 박스가 훼손된 소위 ‘못난이 상품’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고물가에 정상 가격보다 싸면 흔쾌히 제품을 사려는 알뜰 소비자가 늘어난 덕이다. 유통기업들은 겉 포장에 흠집이 있는 전자제품이나 모양이 일그러진 채소·과일 등 못난이 상품을 따로 모아 판매하는 코너를 만들어 늘어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 23일 경기 부천 중동점에 리퍼브 팝업스토어 ‘인생 2회차’ 매장을 열었다. 리퍼브 상품은 기능 이상은 없지만 포장이나 라벨이 상한 상품을 말한다. 전시 상품이나 시즌아웃 상품처럼 정상 판매가 어려운 상품을 깨끗하게 정리해 할인 판매하는 경우도 리퍼브 상품에 속한다. 어원은 ‘새로 꾸민다’는 영어 단어 리퍼비시(Refurbish)를 줄인 유통업계 속어에서 왔다.

이마트 리퍼브 상품은 보통 같은 제품 정가보다 30% 정도 저렴하다. 팝업스토어 제품을 살펴보면 이탈리아산(産) 드롱기 전자머신은 178만원짜리가 89만원에, 로보락 청소기도 148만원짜리 상품이 74만원에 올라왔다. 이 제품들은 정상 판매 제품과 기능 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이마트는 전했다.

전상진 이마트 지원본부장은 “소비자에게 알뜰한 쇼핑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은 재고관리와 물류 효율을 개선할 수 있다”며 “동시에 폐기물로 인한 환경 악영향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어 소비자들이 리퍼브 상품에 긍정적인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 이마트 중동점에서 직원이 리퍼브 팝업 스토어 '인생 2회차' 매장 상품을 고르고 있다. /이마트 제공

공산품뿐 아니라 과일과 채소 역시 ‘못생겨도 죄송하지 않은’ 시대를 맞았다.

과일과 채소는 날씨와 공급량 등에 영향을 크게 받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이들 상품은 저장성도 좋지 않아 가격 변동성이 높은 편이다. 특히 올해는 이상 기후 등으로 과일과 채소 가격이 급등했다.

이랜드가 운영하는 킴스클럽은 ‘쓸어담는 실속채소’ 이름으로 못난이 채소를 모아 판매한다. 이전에는 못난이 사과를 포함한 과일 중심으로 유통하다, 지난해부터 채소 영역으로 확장했다고 킴스클럽 관계자는 전했다.

쓸어담는 실속 채소는 한 개 또는 한 팩에 10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상품군을 구성했다. 8월 셋째 주 기준 양파 1개 300원, 오이 1개 800원, 맛타리버섯 1팩 1000원, 새송이버섯 1팩에 1300원이다.

낱개 단위로 파는 못난이 채소들은 1인 가구가 이용하기에 적합하다. 다만 유통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마트에서 한 망, 한 바구니, 수백 그램 단위로 파는 대신 1개 단위로 채소를 팔면 객단가가 현저히 떨어진다. 제품 재고 관리 측면에도 품목을 개수 별로 파악해야 해 운영 난이도도 높아진다.

킴스클럽은 농가 혹은 지역 공판장에서 원물을 저렴하게, 최단 거리로 구매해 저장 판매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극복했다고 전했다. 킴스클럽은 2012년부터 청과물 산지 별로 각 지역에 저장 센터를 세워 운영 중이다. 각 센터는 가격이 저렴한 수확기에 최대한 원물을 확보해 원가를 낮춘다.

가령 사과 같은 경우 농업법인 계열사 맛누리가 사과 전용 저장 센터를 직접 세우고, 유통 중간 단계를 없앴다. 킴스클럽은 경상북도 영주 끝자락 사과 전용 저장 센터에서 25여 개 산지·품종별 사과 원물을 수확기에 최대한 사전 확보해 보관한다고 전했다. 이런 노력 덕에 올해 1월부터 지난달까지 킴스클럽 못난이 사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05% 성장했다.

킴스클럽 관계자는 “실속 채소류 매출은 지난해 5월부터 12월 사이 29% 성장했고, 판매량으로 치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배가 늘었다”며 “채소 물가가 급격히 치솟은 올해 1월부터 7월 사이에도 매출이 28% 뛰면서 성장 중”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킴스클럽 쓸어담는 실속채소 코너에서 채소를 고르고 있다. /이랜드 제공

롯데마트가 파는 ‘상생채소’ 브랜드 상품, 컬리가 선보인 ‘제각각’, NS홈쇼핑 ‘못난이 시리즈’도 못난이 상품 전용 브랜드다.

앞서 해외에서 이들 못난이 상품은 가치 소비 차원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미국 임퍼펙트 푸드는 2015년 창업한 회사다. 매달 15달러(약 2만원)를 내면 회사 이름처럼 완벽하지 않은 농산물을 매주 소비자에게 전달해 준다. 임퍼펙트 푸드가 취급하는 사과와 오렌지, 토마토 같은 과일과 채소는 상처가 있거나 모양이 흉해 상품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질 위기에 처한 농산물 수십 종을 매입해 시세보다 평균 40% 싸게 팔아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 수는 50만 명에 달한다. 지난해 매출은 10억달러(약 1조3300억원)에 육박했다. 필립 벤 임퍼펙트 푸드 최고경영자는 “편리하게 배송을 받으면서 (환경적) 지속가능성에도 기여할 수 있는 식자재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고물가 영향뿐 아니라 친환경 이슈 등에 따른 가치 소비 움직임이 뚜렷해지면서 못난이 상품들이 더 주목받는 추세라고 유통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환경오염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버려질 것을 살려 다시 가치를 부여하는 업사이클링 소비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의미다.

유엔식량농업기구(UNFAO)에 따르면 상품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음식물은 연간 13억t, 전 세계 음식물 소비량 3분의 1에 달한다. 이러한 음식 폐기물로 배출하는 탄소량은 44억mt(미터톤)에 달한다. 음식 폐기물 처리에 지구 전체 담수 20%가량이 쓰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금껏 채소류는 고급 포장지에 담긴 비싸고 좋은 상품만 고집하던 강남 상권에서도 못난이 농산물을 구매하는 소비 패턴 변화가 보인다”며 “마트 차원에서도 매장 내에 안내 문구를 게시해 소비자에게 못난이 농산물의 특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