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프랑스와 전 세계 와인 생산량 1위 자리를 놓고 매년 엎치락뒤치락한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2021년 이탈리아 와인 생산량은 직전 해보다 2% 늘어난 5020만헥토리터였다. 반면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이전 해보다 19%가 줄어든 3760만헥토리터에 그쳤다. 두 나라 사이 생산량 차이가 이렇게 크게 벌어진 것은 최근 10여 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 최고가 와인은 프랑스 와인이 차지한다. 대중들이 으레 흥미로 뽑는 세계 최고 와인 리스트에서도 이탈리아 와인은 프랑스 와인에 밀리기 일쑤다.

생산량은 물론 품질에서도, 와인을 만들어 온 역사에서도 프랑스에 뒤처질 부분이 없는 이탈리아 와인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 노릇이다.

이런 이탈리아가 자신 있게 프랑스보다 앞선다고 내세우는 분야가 있다면 클래식 음악이다. 전 세계적으로 두루 쓰이는 와인 관련 용어가 프랑스어인 것처럼, 이탈리아는 클래식 음악 악보를 장악했다.

안단테, 포르테, 피아니시모, 크레센도, 칸타타, 스타카토를 포함해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만국 공통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만든 인물도 이탈리아 수사(修士) 귀도 다레조다.

비발디,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처럼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무수히 많은 작곡가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화려한 오페라를 남겼다.

그래픽=손민균

이탈리아에서 가장 북쪽 피에몬테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어 온 바바(BAVA) 와이너리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본인들이 만드는 와인에 투영한다.

작곡가는 음표로 악보를 그려서 즐거움이나 노여움 같은 악상을 표현한다. 이 와이너리는 와인을 하늘과 토양이 그려낸 음악이라 여긴다. 그 해, 그 지역 자연이 연주한 결과물이 와인이라는 믿는다.

바바 와이너리 사장 로베르토 바바(Roberto Bava)는 1980년부터 40년이 넘게 이 와이너리 경영을 맡고 있다. 그는 관악기가 가진 음률은 화이트 와인이 품은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현악기에서 나는 소리는 레드 와인 특성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이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바롤로 스카로네(Barolo Scarrone) 와인에는 콘트라베이스 악기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콘트라베이스는 서양음악에 쓰이는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큰 악기다. 음역은 가장 낮다. 로베르토는 이 와인이 그만큼 무게감 있고,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를 가진 와인이라는 개성을 콘트라베이스로 표현했다.

포도 농사가 풍년인 해에만 한정적으로 나오는 제품에는 스트라디바리오(Stradivario)라는 이름을 붙였다. 스트라디바리오는 이탈리아 크레모나 출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명기(名器)다. 흔히 라틴어 이름 스트라디바리우스로 불린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복제가 불가능한 독특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특한 목재 처리 방식과 디자인 덕분이다. 정경화, 정명화 같은 한국 음악인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웅장하면서도 화려한 이중적인 음색을 동시에 뿜어내는 이 바이올린 매력에 매료됐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좀처럼 경매에 나오는 일이 없다. 대신 나오기만 하면 수백억원을 호가한다. 1721년에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지난 2011년 1590만달러(약 200억원)에 팔렸다.

바바는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가진 음색을 바르베라(Barbera)라는 이 지역 토착 품종 포도로 풀어냈다. 이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은 대체로 병입 초기 복합적인 맛과 향이 부족하다. 그렇다고 오래 보관하면 과실이 가진 향이 사라진다. 이 때문에 주로 저렴한 테이블 와인으로 팔렸다.

바바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양조 방식을 택해 이 포도가 가진 한계를 넘어섰다. 다른 브랜드와 달리 좋은 해에 햇빛을 듬뿍 받기 좋은 남향 포도밭에서 수확한 바르베라 품종 포도 알맹이를 선별해 1년 반 동안 참나무통에서 숙성해 내놓는다.

바바가 만드는 화이트 와인 코르 드 샤세(Cor de Chasse)는 이 와이너리가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겉면에는 관악기 잉글리시 호른(나팔)을 그려 넣었다. 영국인들은 사냥터에 나갈 때면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잉글리시 호른을 불었다. 이 와인 역시 나팔처럼 우아하지만, 나팔 소리처럼 약간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본격적인 음식이 나오기 앞서 식사 분위기를 끌어올리기에 적합하다.

가격도 콘트라베이스를 표현한 바롤로 스카로네 혹은 스트라디바리오에 비하면 4분의 1에도 못 미칠 만큼 저렴하다. 원숙한 연주자들이 펼치는 콘체르토(협주곡) 대신 저녁 자리를 시작하는 서곡(序曲)이라 생각하면 마시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와인은 2024 대한민국 주류대상 화이트 와인 구대륙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수입사는 하이트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