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벌써 마트를 두 곳이나 돌았어요. 마트별로 저렴한 품목이 다른데 명절까지 이렇게 자주 돌면서 좀 더 저렴한 곳에서 하나씩 사려고 하는 겁니다.”

설 명절을 일주일 앞둔 2일 오전 11시. 서울 구로구 한 홈플러스 매장에서 만난 70대 김모씨는 아침 일찍부터 인근 이마트를 들렀다 이곳으로 넘어와 장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같은 물건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니 농민식자재마트, 이마트, 여러 마트를 돌면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고 한다“며 ”요즘 대파 한 단에 4000원씩 하는데 지난주에 조금 싼 데서 구매해 2000원대에 구매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과일을 둘러보고 있다. /김가연 기자

◇과일 전년比 28% 올라… 할인 매대 ‘북적’

과일 코너에는 할인 매대를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통기한이 곧 다가오는 상품이라 다소 신선도는 떨어지지만 비싼 과일값에 사람들이 할인 상품에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신선 과일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8.5% 올라 2011년 1월(31.9%)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봄 기습 한파로 냉해, 우박 피해가 발생했고 여름철 폭염과 장마 등으로 과일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다.

과일을 고르던 이성미(53)씨는 “제수용 사과는 알이 크고 예쁜 걸 써야 하는데 제수용은 3개에 2만원 가까이 하니 살 수가 없다”며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못난이 사과로 대체하려고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물가가 워낙 일제히 올라 마트에 오면 할인 상품부터 찾게 된다“며 ”우유도 할인 매대에 나온 게 한 통 있길래 얼른 집어들었다”고 말했다.

고물가가 지속되자 대형마트는 할인을 진행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할인한 가격조차도 비싸다는 분위기였다. 롯데마트는 오는 7일까지 소고기를 최대 40% 할인, 이마트는 피코크 등을 15일까지 20~30% 할인, 홈플러스도 농산물을 최대 30% 할인한다.

서울 영등포 전통시장. /김가연 기자

◇청과시장 ‘썰렁’… 양 줄이고, 꼭 필요한 재료만 구매

인근인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 거리는 썰렁했다. 가게들은 명절 분위기를 내며 과일 선물 세트를 잔뜩 진열해 놨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상인 A씨는 “명절 일주일 전이면 이 거리는 택배 차가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조용하다”며 “사람들도 선물용은 안 사고 죄다 못난이 묶음 사과 1만원짜리만 사간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 B씨는 “작년 설 명절 대목보다 20~30% 매출이 줄었다”며 “가격만 물어보고 정작 구매해가는 사람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날 대형마트에서 제수용 사과(3입)가 1만6000원, 일반 사과(1.2㎏)가 1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었고, 청과시장에서 사과 한 봉지(1㎏)는 1만원이었다.

‘영등포 전통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전집을 운영하는 상인 C씨는 “이맘때면 전을 사가진 않아도 얼마인지, 명절날도 문을 여는지 등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데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며 “그러니 재료값이 다 올랐는데도 전 가격은 못 올렸다”고 말했다.

곡물을 판매하고 있는 D씨도 “명절이 되면 식혜를 만들어 먹으니까 엿기름이 많이 팔려야 하는데 차례상에 필요한 재료가 아니면 잘 안 사는 분위기”라며 “작년 설에는 엿기름 10포가 팔렸는데 올해는 5포만 준비를 했는데도 거의 안 나갔다”고 설명했다. 엿기름 한 되는 300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국거리용 소고기(100g)는 대형마트에서 7000원, 시장에서 5500원꼴로 판매됐다. 오이(3개)는 대형마트에서 5000원, 시장에서 4000원이었다.

서옥숙(84)씨는 “야채 가격도 다 올랐는데 콩나물은 가격이 괜찮아 구매했다”며 “과일, 나물, 고기만 사도 20만원 이상 깨지니 구매하는 양을 줄이고 꼭 필요한 재료만 산다”고 전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과일, 채소류가 20% 넘게 오르면서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 대형마트 기준 38만580원으로 대형마트가 35.2% 비싸다. 지난해 설 대목 때보다 전통시장, 대형마트 각각 8.9%, 5.8% 가격이 올랐다.

상황이 이렇자 정부도 물가 안정책을 내놓았다. 정부는 명절 물가 안정화 예산을 840억원(지난해 대비 2.8배) 투입해 역대 최대 규모로 성수품 공급과 물가 안정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