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풍(나물)을 아는가? 봄나물의 대표주자 냉이, 달래, 취나물보다는 덜 대중적이지만 쌉싸름한 맛이 특징인 방풍은 ‘풍을 예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 그대로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큰 나물이다. 방풍에 함유된 쿠마린이라는 영양성분이 혈전(혈관 내에서 혈액이 굳어진 덩어리로,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원인 중 하나)의 생성을 막아주고, 혈관을 튼튼하게 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풍은 봄나물의 하나로 알려져있지만 이른 봄부터 11월 중순까지 수확할 수 있어 한겨울 빼고는 식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한 나물류다. 방풍의 주산지는 전남 여수의 금오도 섬이다. 전국 방풍 생산의 80%가 별로 크지도 않은 섬, 금오도에서 수확되는 것은 주민 대부분이 밭에서 방풍을 재배하기 때문이다. 돌이 많은 척박한 토양, 사방에서 불어대는 해풍이 이곳 금오도 방풍나물을 키웠다고 한다. 금오도 방풍은 돌산 갓, 거문고 해풍쑥과 함께 ‘여수 3대 특산품’으로 꼽힌다.
그런데, 방풍나물의 주산지인 금오도에서 방풍을 부재료로 쓴 막걸리와 소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어, 찾아가보았다. 금오도는 육지인 여수와 다리가 연결돼 있지 않아 배를 타고 건너가야 한다. 1~2시간 마다 육지와 섬을 오가는 카페리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을 기점으로 치면,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가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양조장이 아닐까 한다.
이곳 금오도에서 방풍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은 이름이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다. 박재성 대표, 김유희 이사 부부가 경영하고 있으며 술 제조는 박 대표 아내인 김유희 이사가 맡고 있다. 인터뷰에는 김유희 이사가 응했다.
이 부부는 금오도 토박이는 아니다. 여수가 고향인 박 대표가 10년 전 금오도로 귀농했고, 서울 출신인 아내 김 이사도 남편 따라 낯선 섬 금오도로 오게 됐다. 여느 금오도 주민처럼 방풍나물을 재배하던 이들 부부는 우연한 기회에 방풍술을 맞보게 된 것이 계기가 돼, 방풍이 들어간 막걸리와 소주를 빚는 양조장을 차리게 됐다. “동네 어르신이 담금소주에다 말린 방풍뿌리를 1년 이상 침출시킨 방풍소주를 맛봤어요. 사실, 제대로 만든 소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너무 향이 좋은 거예요. 맛도 좋고. 침출술의 대표주자가 인삼주잖아요. 그런데, 인삼주는 흙향도 나고 쓴맛이 강해 좋아하지 않은데, 처음 맛본 방풍 침출술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해보기로 했죠. 그래, 우리 동네에 지천에 널린 게 방풍인데, 방풍으로 술을 만들어보자고요.”
김 이사가 만들기로 한 방풍술은 담금소주에 방풍을 넣어 침출시키는 술이 아니었다. 여수 쌀로 막걸리를 빚어, 발효 도중에 방풍잎을 넣어 쌉싸름한 방풍 향이 느껴지는 방풍막걸리, 그리고 이 막걸리를 증류한 방풍소주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술 만들기가 어려웠다. 시간도 많이 걸렸다. 우선 이들 부부가 술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초보 양조인’인데다, 방풍막걸리를 만드는 기존 양조장이 없어 기댈 것이 전혀 없었다. “강릉에 방풍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생겼다가 오래 가지 않아 없어졌다는 얘기는 들었을 뿐, 참조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어요.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차근차근 술을 만들어나갔어요. 결국 술을 시작한지 2년이 지나서야 방풍막걸리를 출시할 수 있었어요.”
연구개발에만 2년 이상 걸린 가장 큰 이유는 방풍을 어떻게 가공해, 얼마만큼 쌀막걸리에 넣느냐를 결정하는게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다. “방풍을 너무 많이 넣으면 쓴맛이 도드라지고, 또 적게 넣으면 ‘방풍을 넣었어? 안 넣었어?’ 이런 시비가 생길게 뻔하고. 도대체 얼마를 넣을 것인가를 찾는게 가장 어려웠어요. 가공 방법도 또다른 문제였어요. 방풍을 직접 넣을 것인가? 갈아서 즙으로? 혹은 가루로? 결국 해볼 수 있는 건 다해봤어요. 제품화된 방풍막걸리는 방풍즙 형태로 (쌀 대비)7.7%를 넣어 만들어요. 또 쌀도 멥쌀로 술을 빚어보고, 찹쌀로도 해보고. 이러다보니 2년이 후딱 갔어요.”
이곳 방풍막걸리는 삼양주다. ‘삼양’의 뜻은 세번 담금이란 의미로, 처음 밑술을 만들고 2번의 덧술을 더해 만든 술이 삼양주다. 한번으로 술을 완성하는 단양주, 밑술에 덧술 한번 더해 빚는 이양주에 비해 삼양주는 술빚기가 안정적이란 장점이 있지만, 번거롭다(술을 세번 빚어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한마디로 삼양주는 정성이 들어간 술이다.
세번이나 술을 담가야 하니, 방풍막걸리 만드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발효와 숙성을 합쳐 한달 지나서야 술병에 담는다. 알코올 도수 6도 2종(멥쌀, 찹쌀)과 10도 세가지 막걸리가 있다. 멥쌀로 빚은 6도 제품은 2500원, 찹쌀 6도와 10도 제품은 6000원이다. 지역특산주이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방풍막걸리는 그러나, 방풍 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예민한 사람은 물론 느낄 수 있지만, 쌉싸름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소비자들도 많다. 사실, 쌉싸름한 맛도 쓴맛의 일종인데, 쓴맛이 도드라지면 좋은 술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쌉싸름한 방풍 맛이 강하지 않게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 단맛도 강하지 않다. 짐작컨대, 단맛의 일부를 방풍의 쌉싸름함이 잡아주지 않았나 생각된다. 방풍막걸리에는 극소량의 인공감미료가 들어가 있는데, ‘스크랄로스’가 그것으로 설탕 단맛의 600배나 된다고 한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 김유희 이사는 “스크랄로스는 어린이 해열제에 들어가는 고가의 단맛 재료”라고 말했다.
금오도섬마을방풍도가가 작년에 새로 내놓은 제품이 소주다. 방풍막걸리를 3회 상압증류해서 만든다. 알코올 도수 기준으로 18도(오동도), 25도(금오도), 45도(거문도) 3종의 소주다. 그런데 양조장 ‘좀 가본’ 기자도 낯선 게 ‘3회 증류’다. “사실 한번만 증류해도 알코올 도수가 50도를 넘어 소주 만드는데 문제는 없어요. 3회 증류하면 무려 88도까지 올라가요. 여러번 증류하는 과정에 또 알코올 손실도 꽤 있으니, 증류를 더할수록 수율(생산성)은 떨어진다고 봐야 맞죠. 그럼에도 3번이나 증류하는 것은 3회 증류한 원액이 목넘김이 훨씬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방풍 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번 증류한 술을 마셔보니, 무언가 목에 걸리는 맛이 있어요. 증류주는 일단, 부드럽게 목을 통과해야 하는데, 뭔가 걸리는게 있다면 제가 추구하는 술 스타일은 아니죠. 그래서 3회 증류해서 방풍소주를 만듭니다.”
2024년, 올해의 신상품도 준비 중이다. 소주를 베이스(기본 술)로 해서 하이볼을 만들 참이다. 이름하여 ‘섬씽(섬을 노래한다) 하이’다. 김유희 이사는 말한다. “2026년에는 세계 최초로 세계섬박람회가 이곳 여수에서 열려요. 그래서 술을 매개로 해서라도 섬 홍보를 적극하겠다는 생각입니다. 여수를 대표하는 섬은 오동도(18도 술), 금오도(25도), 거문도(45도)입니다. 그래서 소주 이름도 이 3곳의 섬 이름을 붙인 거구요. 섬 많은 여수를 알리는 방법을 찾던 중에 소주 이름을 ‘섬씽(섬을 노래하다)’으로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