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박스를 들고 전국 팔도를 돌며 가정집 김치까지 공수해 옵니다. 최대한 다양한 김치를 얻기 위함이죠.”

지난 7일 방문한 광주광역시 남구 ‘세계김치연구소’. 120여명의 연구원들이 김치 ‘균주’를 연구하는 곳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세계김치연구소는 균으로 김치 발효 정도를 조절해 김치 맛을 표준화하는 연구를 한다.

아울러 국내 기업이 품질 좋은 김치, 프로바이오틱스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인기리에 판매 중인 조선호텔 김치가 이곳의 품질향상 균주를 기술이전 받아 개발됐다.

영하 75도 냉동고에 보관돼있는 김치 균/김가연 기자

◇배추김치, 공산품처럼 표준화 연구… “깍두기는 아직”

김치자원은행은 균주 3만5000종 중 우수한 1257종을 선별해 관리하고 있다. 이 곳은 균을 영하 75도(℃) 냉동고 6대에 나뉘어 보관한다. 냉동고에는 작은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는데 한 상자에 100개가량의 균주가 보관돼 있었다.

하지형 선임연구원은 “보관된 균주 중 ‘류코노스톡 메센테로이데스’는 김치 발효 초기에 주를 이루는 균으로 김치 양념을 만들 때 이 균을 파우더로 넣으면 신선한 맛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면서 “종균으로 신맛, 단맛을 조절해 김치를 표준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김치연구소는 아직 배추김치에 대한 연구만 진행하고 있어 다른 종류의 김치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한다. 향후 깍두기에 대한 연구도 이어갈 계획이다.

김치에서 균을 분리해내는 과정/김가연 기자

◇김치 1g당 유산균 1억마리… 균 분리 위해 ‘김치 국물’ 이용

김치가 숙성되면 다른 균은 대부분 소멸하고 유산균이 증식한다. 김치 담금 초기에는 1그램(g)당 1만~10만마리 유산균이 존재하지만 4도에서 한 달간 보관하면 1g당 1억마리 유산균이 발견된다.

균 분리를 위해 김치(25g)를 믹서기로 분쇄한 뒤 멸균물(225g)과 함께 멸균 지퍼백에 붓는다. 김치 표면에 있는 유산균이 김치 물에 묻어 나올 수 있도록 1분간 기계에 넣고 지퍼백을 흔들어 희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사용하는 지퍼백은 특수 제작된 멸균 지퍼백이다. 지퍼백 중간에 거즈가 있어 한쪽에 김치를 넣고 물을 부었을 때 거즈에 걸려 다른 한쪽으로는 김치 건더기가 못 넘어오게 만들어진 것이다.

배지에서 배양한 김치 균/김가연 기자

◇유제품과 달리 저온 발효… 김치에 저온성 유산균 시험법 적용

희석한 김치 국물을 배지에 넣어 3~4일 동안 산소가 없는 10~20℃ 환경에서 키우면 유산균이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자란다.

세계김치연구소는 저온성(10~20℃) 유산균에 최적화된 시험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지난달 한국인정기구(KOLAS)로부터 ‘공인시험기관’으로 인정받았다. 단 저온성 조건에서는 중온성 조건에서보다 균주 배양에 1~2일이 더 소요된다는 단점이 있다.

고혜인 연구원은 “유제품을 주로 연구하는 해외 연구를 따라 중온성(30~40℃)에서 연구했을 때 잘 자라지 않는 균들이 있었다”면서 “저온성 시험법으로 바꾸고 균을 쉽게 관찰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아직 지역별 김치 균 차이 발견 못해

다만 매년 전국 각지 수백 포기의 김치를 연구하고 있지만 지역별 김치 균주의 큰 차이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연구원들은 각기 다른 조건의 김치에서 발견되는 균 종류의 차이가 있는지, 어떤 조건의 김치가 항균물질을 더 많이 포함하고 있는지 등을 연구 중이다.

김태운 책임연구원은 “남쪽 지역은 염도가 높은 젓갈을 많이 쓰는 등 지역마다 날씨뿐 아니라 양념으로 들어가는 재료 구성비도 다르다”면서 “아직 지역별 큰 차이를 발견하진 못했지만 균을 키우는 배지 성분을 바꿔보는 등 여러 방법으로 균 분리 연구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