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뜨거운 국물 힘으로 버틴다’고 한다. ‘밥심’ 다음으로 많이 쓰는 상징이다. 뜨거운 국 한 그릇에 밥 한 사발 훌훌 뚝딱 말아 먹었다 같은 표현이 흔하다.

국물 음식 인기가 정점을 찍은 시점은 2019년이다. 온갖 유명인이 여러 매체에 출연해 냉면 육수를 두고 논쟁을 펼쳤다.

‘밋밋한 육수를 즐길 줄 알아야 진짜 냉면 맛을 아는 것이다’라는 마니아들 설명이 이어졌다. 식품회사들은 육개장과 순두부찌개 레토르트를 쉴 새 없이 만들었다. 이 제품들은 홈쇼핑에서 연신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이 닥친 이후 한국인 밥상에서 국물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가 이끄는 푸드비즈니스랩은 엔데믹 이후 우리 입맛은 국물 음식을 멀리하고, 샐러드 같은 건강식을 찾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7일 밝혔다. 여기에 소비자가 선호하는 요소를 강화한 간편식을 찾는 수요도 두드러졌다.

① 밥상에서도, 점심 메뉴에서도 사라진 국·탕·찌개

푸드비즈니스랩이 펴낸 2024 푸드트렌드에 따르면 탕과 국, 찌개, 곰탕 같은 전통적인 국물 음식을 먹는 소비자는 팬데믹 이후 최대 17% 줄었다.

찌개는 전통적으로 밥상 한가운데를 차지했던 주요 메뉴다. 직장인 점심 식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최근 3년 사이 입지가 가장 눈에 띄게 감소했다.

그래픽=손민균

팬데믹 이전에 찌개를 직접 해먹던 소비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팬데믹 이후 다른 메뉴를 택했다. 외식 메뉴로 찌개를 고르던 소비자 역시 22%가 사라졌다.

밥 옆에 놓고 먹는 국과 탕, 육류를 푹 고아 만드는 곰탕 역시 외면 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 직접 만들어 먹는 수요, 바깥에서 사 먹는 빈도가 전부 내리막을 탔다.

찌개 대표격인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나란히 섭취 빈도가 18%, 23%씩 줄었다. 삼계탕과 갈비탕 같은 간판 탕류 요리도 먹는 횟수가 각각 8%, 12% 감소했다.

오로지 간편식(HMR·Home Meal Replacement) 형태로 국물 음식을 즐기는 소비자가 크게 늘었지만, 대세를 거스르긴 어려웠다.

② 主食으로 떠오른 샐러드

대표적인 한식(韓食)에 해당하는 이들 메뉴를 찾는 소비자가 뜸해지면서 한국인 식단에 한식이 올라오는 사례는 2019년 가을을 정점으로 꾸준히 감소했다.

문정훈 교수는 “‘밥이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밥과 먹어야 하는 국, 탕, 찌개 섭취 추이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1980~2004년생)를 중심으로 퍼진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도 국물 음식 발목을 잡았다. 과거 건강 관리가 고통을 감수하면서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헬시 플레저는 재밌고 효율적인 건강 관리에서 오는 기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위를 뜻한다.

짠 국물 음식을 대신하는 ‘저염(抵鹽) 식단’은 대표적인 헬시 플레저 실천 방법이다.

이를 증명하듯 샐러드는 몇 년 새 곁들이는 음식에서 메인 메뉴로 변신했다. 올해 푸드비즈니스랩 조사에 따르면 샐러드는 한국인이 다섯번째로 자주 섭취하는 메뉴로 떠올랐다.

③ ‘겉모습도 평범하게’... 취향에 맞춘 건강식

팬데믹 기간 내내 식품업계를 휩쓸었던 간편식 역시 이 추세를 따르고 있다.

간편식 맛을 본 소비자들은 엔데믹 시대에 접어든 이후 직접 요리를 하는 경우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데 별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은 이전보다 커졌다.

“요리는 덜 하고 싶지만
건강하게 먹고 싶은 소비자를 위한 간편식,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과 똑같이 생겼지만
역량을 강화한 음식이 성장할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건강식을 표방하던 기존 간편식은 일상식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닭가슴살 혹은 단백질 강화 음료가 그 예다. 모두 ‘건강식’이라는 미명 아래 기능성에 치중한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혼자서 섭취하기에 적합해도, 모두가 어울려 먹기 어려웠다.

이 시장에 최근 겉보기에 일상식과 다르지 않은 간편식이 속속 등장했다.

이들 제품은 겉모습이 익히 알던 음식과 다르지 않다.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지만, 유별나게 먹고 싶지는 않다’는 요구에 식품 기업들이 응답한 결과다.

다만 대체소재나 새 공법을 사용해 소비자가 선호하는 요소를 강화해 일반 제품과 차별화했다.

그래픽=정서희

문 교수는 풀무원(017810)이 두유를 사용해 만든 실키두유면을 상징적인 제품으로 꼽았다. 기존 두부로 만든 면 제품은 모습이 얇고 넓적하다. 제조 공정 상 나타나는 면포 자국이 뚜렷해 일반 국수와 거리가 멀었다.

이 제품은 제조 공정을 차별화해 생김새가 영락없는 소면이다. 여기에 탄수화물 성분을 줄이고, 단백질 성분을 강화했다. 채식에 적합한 식물성 제품이기도 하다. 이 제품은 올해 2023 대한민국 푸드앤푸드테크대상에 출품한 255개 제품 가운데 최고 식품에 수여하는 ‘탑 오브 베스트’를 받았다.

곤약으로 만든 쌀, 콩가루로 만든 파스타면, 메밀로 만든 햇반이 또 다른 예다.

문 교수는 “소비자가 염두에 둔 영양소 섭취 여부를 명쾌하게 제시한 간편식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며 “다양한 소재로 기존 식재료를 대체해 칼로리를 줄인 제품, 고령층이나 운동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를 겨냥한 단백질 강화 간편식이 주목 받는 중”이라고 말했다.

‘푸드트렌드’는 매년 국내 식품외식시장 흐름을 예측하는 전문 서적이다. 푸드비즈니스랩이 오픈서베이 푸드다이어리와 마크로밀엠브레인 소비자 패널 같은 국내 최대 소비자 데이터베이스(DB)를 바탕으로 작성해 식품저널이 발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