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에서 직계 가족이 아닌 사위와 사돈을 회사 경영에 참여시키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회사에서 전략적으로 힘을 싣는 사업에 혼인으로 맺어진 가족들을 투입, 책임감 있는 경영을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8일 오뚜기(007310)의 김경호 전 LG전자 부사장 영입은 유통업계의 ‘가족 경영 강화’ 사례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오뚜기는 김 전 부사장을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신규 영입했는데, 그는 오뚜기 3세인 1992년생 함연지씨의 시아버지이자 함영준 오뚜기 회장의 사돈이다.

왼쪽부터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김경호 오뚜기 글로벌사업본부장(부사장)./오뚜기 제공

◇ “남보다 조심스러운 사이, 사돈…책임감 막중”

김 부사장은 해외 사업이 취약한 오뚜기의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해 영입됐다. 오뚜기는 농심(004370)이나 삼양식품(003230) 등 경쟁사에 비해 해외 사업이 취약하다고 평가된다. 내수 매출 비중이 90%에 달해 국내 경기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오뚜기는 이번 김 부사장 영입과 함께 기존 글로벌사업부를 ‘글로벌사업본부’로 격상했다. 오뚜기 내에서 제조본부, 영업본부, 품질보증본부 등 회사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조직들만 ‘본부’로 편제돼 있었다.

오뚜기 관계자는 “사돈이라면 전혀 연이 없는 사이보다 오히려 조심스러울 수 있는데 해외 매출 증대는 워낙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에 (김 부사장이) 결심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책임감과 중압감이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번 김 부사장 선임이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인사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글로벌 사업 경험이 있는 김 부사장에게 함 회장이 거는 기대가 큰 만큼, 부담감도 상당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김 부사장은 20년간 액센츄어 등 컨설팅 업계에 종사해 왔다. 액센츄어타이완 지사장으로 일할 땐 대만 현지 제조기업들에 대한 컨설팅을 수행했고, 지난 2009년부터 LG전자(066570)에서 CIO 정보전략팀장, BS유럽사업담당(부사장) 등으로 일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김 부사장의 영입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오뚜기의 ‘가족 경영 강화’ 움직임이 다시금 시작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앞서 김 신임 본부장의 아들이자, 함 회장의 사위인 김재우씨는 홍콩 소재 금융권 회사를 다니다 2017년 함연지씨와 결혼한 뒤 2018년 오뚜기에 입사했다. 그는 현재 오뚜기를 휴직하고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김씨가 오뚜기에 합류한 후 지난 2019년에는 오뚜기 주식 1000주(0.02%)를 보유해 특별관계자로 신규 편입되기도 했다. 당시 경영활동 참여의 신호탄이 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울러 함연지씨의 오빠로 오뚜기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함윤식 경영관리부문 차장과도 어떤 시너지를 낼지 관심거리다.

그래픽=손민균

◇CJ도 ‘사돈’에 글로벌 경영 맡겨…사위 경영 원조 ‘오리온’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지난 2009년 사돈 정영수 고문을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으로 앉혔다. 정 고문은 이경후 CJ ENM(035760) 브랜드전략실장의 시아버지다. 정 고문은 미주, 유럽, 동남아 8개국을 총괄하고 있다.

오뚜기와 마찬가지로 정 고문이 글로벌경영을 맡게 된 건 그의 해외 사업 경력 때문이었다. 정 고문은 한국마벨의 홍콩 주재원으로 5년, 싱가포르 법인장으로 3년을 근무한 후 1984년 39살에 싱가포르 현지에서 비디오·오디오 테이프를 판매하는 ‘진맥스’를 창업해 1억달러를 수출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싱가포르 국제상공회의소 이사를 맡아 한국 중소기업의 동남아 진출을 돕기도 했다.

유통업계에서 사돈 영입은 흔치 않지만, 사위를 회사로 들여 경영에 참여시키는 사례는 빈번했다.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 부사장은 이명희 신세계(004170) 회장의 사위이자 정유경 신세계 총괄사장의 남편이다. 지난 2001년 결혼한 정 총괄사장과 문 부사장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지난 2019년 신세계그룹이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하면서 신규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사업기획본부를 신설하고, 산하에 신규사업담당·기획담당·마케팅담당을 편제했다. 신설된 사업기획본부의 수장으로 문성욱 부사장을 선임한 것이다.

문 부사장은 앞서 2015년부터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패션라이프스타일부문 글로벌1본부를 맡아 수입 패션브랜드와 자주 등을 지휘해 오기도 했다. 아울러 신세계그룹의 CVC(기업형벤처캐피탈)인 시그나이트파트너스를 이끌며 투자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271560)그룹 회장은 ‘사위 경영’의 원조다. 동양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의 남편인 담 회장은 1989년 장인이 별세한 뒤 유통과 미디어사업을 물려받았다.

화교3세인 담 회장은 오리온 중국시장 진출을 이끌었다. 그는 중국 현지화 전략을 써 초코파이도 중국어로 ‘좋은 친구’라는 뜻의 ‘하오리요우(好麗友)파이’로 정했다.

그는 지난 2001년 오리온그룹을 맡아 7000억원이었던 매출을 지난해 2조8732억원까지 끌어올렸다. 올해 2, 3분기 오리온의 중국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43%, 22% 증가하기도 했다.

신정훈 해태제과식품(101530) 대표도 윤영달 회장의 사위다. 신 대표는 2005년 크라운제과와 해태제과를 합병할 때 상무로 입사해 2008년부터 해태제과 대표가 됐다. 신 대표는 2014년에 허니버터칩 출시로 해태제과의 부활을 이끌었다.

◇사돈·사위 영입, 신뢰 때문...전문가 “사적 관계 공적 영역 확장시, 기업 존폐 위협 우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이어지는 사돈·사위 영입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업을 맡겨야 한다는 기업 총수들의 강한 믿음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같은 느슨한 사적 관계가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됐을 경우 자칫 기업의 존폐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기업 총수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가족에 한정돼 있다는 것도 한국 기업 문화의 한계로 지적됐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에서는 신뢰 문제 때문에 인재를 영입할 때 인맥으로 영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돈이나 사위는 믿을 수 있는 인맥 중 하나”라면서도 “다만 한국 기업이 수평적 문화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사돈·사위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 가족 관계와 기업 모두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지는 장기적으로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글로벌 사업 분야는 단기적으로 실적이 나오는 쪽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오뚜기처럼 해외 사업 확장을 책임지면서 회장인 사돈과 우호적인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건 큰 과제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믿을 수 있는 사람 중에 혈연보다 더 능력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기업에서 사위나 사돈을 모셔오는 것”이라면서 “사실 미국 대부분 상장사는 회사 직원 중 괜찮은 사람을 10~20년 키워 회사를 승계하게 하기도 하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신뢰 범위가 가족에 한정돼 있다는 점은 한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