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식품기업 3세들이 속속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해외 사업은 식품기업 실적을 좌우하는 키(key)다. 국내 시장은 당장 소비 인구가 줄고 있다. 여러 원가 부담도 커졌다. 반면 해외시장 매출 기여도는 해가 다르게 급성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097950), SPC, 농심(004370), 오리온(271560), 삼양식품, 사조 같은 주요 식품기업 3세들은 일찍부터 미국 혹은 중국 같은 주요 해외시장에서 공부했다. 이들은 해외 사업 확대, 미래 신사업 발굴이라는 같은 숙제를 두고 비슷한 시기에 시험대에 올랐다.

동시에 오너가(家) 일원으로, 3세들은 전문경영인보다 기민하고 과감하게 미래 사업을 이끌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지난 13일 사조그룹은 인그리디언코리아 인수를 밝히면서 이례적으로 ‘이번 인수는 주지홍 사조그룹 부회장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사조그룹은 미국 시카고에서 이번 인수를 마무리했다. 주 부회장은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시카고 인근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경제학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멀지 않은 미시간대 경영대학원(MBA)에서 공부했다.

인그리디언코리아 인수 계약 규모는 3억달러(약 3840억원)에 달한다. 사조그룹 상장사 사조대림(003960) 시가총액 2700여원보다 1000억원 이상 많다.

한국식품산업협회 관계자는 “사조그룹은 1971년 배 한 척으로 시작한 이후 공격적인 M&A로 50여년 만에 지금처럼 컸다”며 “차별화한 M&A를 하려면 오너가 과감하게 판단해야 하는데, 3세들은 임기제로 일하는 전문경영인보다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식품업계는 통상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산업 분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식품시장 성장이 정체되자, 2세 오너들은 3세 자녀들을 해외 주요 사업에 일찍 전진 배치했다.

SPC그룹은 허영인 회장 장남 허진수 SPC그룹 사장이 선봉에 섰다. 허진수 사장은 연세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친 국내파다.

대신 업무와 바로 이어지는 빵 관련 기술을 미국 현지에서 익혔다. 그가 나온 AIB(미국제빵연구소)는 캔자스주에서 1919년 설립한 유서깊은 제빵 교육기관이다.

그는 이 지식을 바탕으로 파리바게뜨 해외 진출을 총괄하며 ‘K-빵 세계화’에 집중하고 있다. 허 사장 감독 아래 파리바게뜨는 최근 싱가포르 창이 공항 2터미널에 ‘T2 랜드사이드점’ 문을 열며 해외 500호점을 달성했다.

1970년대에 태어난 두 3세들과 달리 1990년을 전후해 태어난 젊은 식품업계 3세들은 모두 학부부터 미국 뉴욕에서 나왔다.

담서원 오리온(271560) 상무는 뉴욕대를 나왔다. 그는 뉴욕대 졸업 이후 중국 북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하며 중국 시장 네트워크도 쌓았다. 오리온은 중국 매출 비중이 40% 중반대에 달한다.

담 상무는 미국과 중국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한 지 1년 6개월 만에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그는 현재 오리온에서 기획과 사업전략 수립, 신사업 발굴 같은 주요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이선호 CJ제일제당(097950) 경영리더와 신상열 농심 상무,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상무는 모두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공부했다. 학교를 다닌 시기도 비슷하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CJ제일제당에서 해외사업 확장과 신사업 진출을 포괄하는 핵심 콘트롤타워 식품성장추진실을 담당한다.

식품성장추진실은 CJ제일제당이 자랑하는 비비고 브랜드로 만두와 김치 같은 기존 주요 제품을 세계시장에 더 널리 알리는 중책을 맡고 있다. CJ제일제당 역시 이 경영리더 아래 M&A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신사업 발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라면업계 1위 농심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상무는 글로벌 시장에서 농심 입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체육과 건강기능식품 같은 신사업 돌파구를 마련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신 상무가 맡은 구매실장직(職)은 식품기업에서 수익성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자리다. 특히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 전쟁으로 글로벌 식품 원재료 가격이 출렁이는 요즘에는 원가 관리 중요성이 더 커졌다.

농심(004370)은 라면 매출 비중이 80%에 달한다. 최근 몇 년간 소맥분과 팜유 같은 라면 원재료에 반영하는 비용은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 탓에 농심은 영업이익률이 2020년 6.1%에서 2021년 4%, 2022년 3.6%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신 상무는 올해 상반기 기준 농심의 영업이익(1175억원)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배 이상 끌어올리며 실력을 입증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6.9%로 상승했다.

전인장 삼양라운드스퀘어 회장 장남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은 일찍부터 해외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9년 당시 삼양식품(003230) 해외사업부 부장으로 입사 한 뒤, 2020년 해외사업부 이사를 역임했다. 그가 해외사업을 이끄는 동안 삼양라운드스퀘어 주력 상품 ‘불닭볶음면’은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면서 출시 10년 만에 누적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김지형 한양여대 외식산업과 교수는 “30대 나이 젊은 식품업계 3세들은 긴 유학 생활 동안 가장 큰 K-푸드 시장 미국에서 우리나라 식품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 가까이서 꾸준히 지켜본 경험이 있다”며 “이 지식을 쌓은 만큼 앞으로 해외시장에서 같이 공부한 선후배들과 진검 승부를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