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쿠팡 새벽 배송 현황 지도와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의 지도를 겹친 그림이 화제가 됐다. 쿠팡 새벽 배송이 되는 수도권, 지방 거점과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 완전히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 자료를 언급하면서 “새벽 배송이 안 되는 지역에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멸 위험 지역은 국내 행정구역 중 인구 감소 등으로 소멸 위기에 있는 지역이다. 65세 이상 인구가 20~39세 여성의 수보다 2배 이상 많으면 소멸 위험 지역에 해당한다. 인구의 유출·유입 등의 다른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경우 약 30년 뒤에는 그 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쿠팡이 전국적으로 새벽 배송 망을 구축할 때 제주도보다도 늦게 한 곳이 전북과 전남 지역이었다”며 “인구가 집적돼 있어야 인프라를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데, 인구가 대부분 흩어져 있는 지역들에는 배송 망을 구축하기에 사업적인 효율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3월 기준 소멸위험지역은 113곳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약 절반(49.6%)에 해당했다.

2020년과 비교해 2년만에 기초 지자체 11곳이 신규로 소멸 위험 지역에 진입했고, 제조업 쇠퇴 지역(통영시, 군산시 등)과 수도권 외곽(포천시, 동두천시)으로 확산됐다.

그래픽=손민균

전문가들은 소멸 위험 지역 거주민들이 유통 물류망에서 소외되면서, 원하는 식품을 제 때 구매하지 못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소비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특히 노인들을 위한 사회공헌 측면의 유통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장년층이 주된 고객인 대형마트의 경우 지속적으로 점포 수를 줄이고 있다. 이달 기준 창고형 매장을 포함한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전국 점포 수는 396개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400개 미만으로 줄었다. 2019년 424개까지 증가했다가 이후 매년 감소세다.

◇도심·지방 거점 매장 강화...非 거점 축소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조선비즈 본사에서 열린 ‘인구 절벽에 따른 소비 지형 변화’ 전문가 좌담회에 참석한 정연승 교수는 “유통망 확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방에 ‘식품 사막화’ 현상이 벌어진다”고 말했다.

‘식품 사막’은 식료품 상점이 철수해 주민들이 신선식품을 구매하기 어려워진 지역을 말한다. 미국, 일본 등에서 2000년대 초중반부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일본에서는 고령화로 인해 도시 구조가 급격히 바뀌면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식품 사막 지역 거주민들은 쇼핑의 어려움으로 인해 영양 불균형이 발생하는 등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일본처럼 고령화로 인한 식품 사막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우려했다.

문정훈 교수는 “건강하지 않은 채로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이동 능력은 떨어진다”며 “그럴 수록 유통 물류의 편리성에 기댈텐데, 가면 갈수록 인구 집적도가 떨어지는 농촌 지역 노인들은 소외될 가능성이 커 식품 공급망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도 대형마트를 비롯한 유통 업체들이 점차 인구 집적도가 낮은 지역에서 철수하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소장은 “유통업체들 입장에서 계속 적자를 감수할 수 없어, 점점 도심 매장만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며 “지방은 거점 도시의 매장으로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이고, 비(非) 거점 지역의 점포 수를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6일 조선비즈 본사에서 열린 ‘인구 절벽에 따른 소비 지형 변화’ 전문가 좌담회에 참석한 (왼쪽부터)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이민아 기자

◇소멸 위험 지역 거주민 위한 유통 서비스 필요

전문가들은 소멸 위험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층이 식품 섭취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유통 업체 차원에서 사회 공헌 관점의 지방 진출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또한, 대형 유통 업체가 지방으로 진출하는 것을 규제하는 법을 일정 수준 재정비하는 것도 함께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이 소장은 “일본 1위 유통 그룹 이온그룹 등에서는 이동형 매장을 운영했다”며 “트럭 등으로 정기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역, 집이 한 두곳밖에 남아있지 않은 지역을 찾아가 상품을 팔았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이 신청한 물건을 다음번 방문 때 판매하는 식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비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식품 사막화가 벌어지는 지역에는 복지나 균형발전 차원에서 그 지역을 돌보는 ESG 관점의 유통 채널 진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수도권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노인 인구 비율을 고려해, 맞춤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국내 유통 산업 환경에서 기업이 소멸 위험 지역에서 영업 활동을 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려면 관련 법 정비가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한국에서 일본처럼 유통망을 제공하려면 유통산업발전법 등을 비롯해 전반적인 법 정비가 필요하다”며 “현재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 마트 개점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신규 출점을 할 때 제한을 받고 있다. 출점 규제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형마트를 포함 3000㎡가 넘는 대규모 점포와 준대규모 점포가 출점할 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또 전통상업보존구역에서의 출점은 제한된다.

정 교수는 “정부도 소비에서 소외되는 사람을 도울 방법을 찾아 기업과 함께 시도할 필요가 있다”며 “그것이 정부가 늘 강조하는 지역 균형 발전의 한가지 형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