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다가올 ‘인구 절벽’은 정해진 미래다. 한국은 출생아는 적은 반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은 증가하는 ‘역 피라미드 인구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조선비즈는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 등 전문가들과 ‘인구 절벽에 따른 소비 지형 변화’에 대한 좌담회를 열었다. 이를 통해 인구 절벽을 목전에 둔 유통 기업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편집자주]

“G.G몰(Grand Generation, 고령자층을 지칭)은 올해 10월 사라졌습니다. 이 곳의 목표 고객층은 ‘부모와 아이로 구성된 가족’ 단위로 바뀌었습니다.”

지난 29일 찾은 도쿄 에도가와시 이온 가사이점은 휴일인 일요일임에도 한산했다. “고령 친화를 내건 G.G몰이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이 곳의 직원은 “올해 10월 20일쯤 사라졌다”며 이같이 답했다.

가사이점은 일본 유통업체 1위 이온이 노인 친화 점포로 대대적으로 개편 후 홍보를 했던 매장이었지만, 현재는 고령 친화적 시도의 흔적은 사라져 있었다. 이곳은 한국보다 초고령화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 배울만한 유통 채널의 혁신 시도로 한국 유통업계에서 주목받았던 사례였다.

일본 도쿄 이온 가사이점에 과거 GG몰 개점 당시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 공간이었던 곳이 이달 29일 찾으니 서점으로 바뀌어 있었다./도쿄(일본)=이민아 기자

이온은 지난 2013년 이 매장을 대대적으로 고쳐 55세 이상 소비자를 주 고객으로 하는 ‘G.G몰’을 열었다. 고령자를 위해 가격 글씨나 상품 설명 크기를 확대 적용했고, 직원들에게는 시니어 서비스 자격증을 취득하게 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제공했다. ‘인생은 후반전이 재미있다’는 감성적인 광고 문구도 내세웠다.

하지만, 이날 찾은 이온이 고령층 소구점으로 내세웠던 ‘G.G 전용 컨시어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기존 G.G몰 시절 노인층 대상 이벤트 홀로 운영했던 중앙 공간은 현재는 젊은 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서점이 들어서 있었다. 가장 인기가 많은 곳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오락 기계와 인형 뽑기 기계가 가득한 공간이었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이온의 G.G몰이 실패한 이유는 노골적인 ‘노인 겨냥’이었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노인 세대는 마음도 젊고 IT 접근성이 높기 때문에 고령층을 정조준하면 오히려 외면한다. 유통업체들이 간접적으로 편의성을 강조하는 등의 은근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통 전문가들은 한국의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의 특징을 네버랜드 신드롬(Neverland Syndrome)으로 요약한다. 네버랜드 신드롬은 소설 ‘피터 팬’의 주인공 피터 팬이 사는 가상의 나라 네버랜드에서 유래한 말이다. 네버랜드에서는 아이들이 영원히 나이들지 않는다.

◇본인 나이보다 10세는 어리게 행동하고 돈 쓴다

지난 16일 조선비즈 본사에서 열린 ‘인구 절벽에 따른 소비 지형 변화’ 전문가 좌담회에 참석한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요즘 50·60대 소비자들은 40대가 즐겨입는 옷을 입고, 자신의 나이보다 10세 이상 어린 고객층을 목표로 하는 제품을 산다”며 “노골적으로 실버 세대를 겨냥하면 오히려 외면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베이비부머 세대는 한국 역사상 인구 수가 가장 많은 세대다. 올해는 1차 베이비부머의 막내 격인 1963년생마저 60대에 접어든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실제 나이보다 스스로를 10세 이상 어리게 인식한다. 이 때문에 노골적으로 고령층을 노린 제품과 서비스에 거부감을 느낀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베이비부머 세대는 가족을 위한 헌신, 고생 등을 당연히 여기는 예전의 노인 세대와는 다르다”며 “이 세대의 ‘스스로를 위한 소비’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고, 이는 노인 한 사람당 소비 성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유통 기업에는 긍정적인 기회 요인”이라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에는 고학력·고소득자의 비중이 높다. 기업 입장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소비 성향이 큰 고객들이지만, 그만큼 제품과 서비스를 평가하는 눈이 높고 까다롭다. 기초수급자의 비율이 높았던 70대 이상의 고령자와는 소비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는 60대에 접어들었지만,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젊고, 건강하고, IT와 디지털 기기에도 친숙하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실시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60대 중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의 비중은 92%에 달했다. 기존에는 ‘60대 이상’으로 노년층을 한번에 조사했던 한국갤럽은 지난해부터 60대와 70대 이상을 구분해 집계하고 있다.

◇”고령자 증가, 식품 업계엔 오히려 기회”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학부 교수는 이같은 ‘네버랜드 신드롬’이 실버 푸드(노인식) 시장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식품기업에서도 신제품을 개발할때 ‘50대 후반~ 60대’를 대놓고 겨냥해서 연구·기획팀에서 만들어오면, 정작 해당 연령대인 임원들이나 사장들 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노인 취급을 받는 것을 식품 기업 임원진들조차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가면 갈수록 유통 기업이 노릴 여지가 많은 소비 시장은 네버랜드 신드롬을 가진 ‘키덜트’들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노인이라고 해도 연화, 저작에 큰 문제가 없으면 일상식을 더 좋아하고, 노인 전용 식품을 거부한다”며 “식품 기업에서 바라보는 ‘노인’들과 실제 노인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 또는 제품 구매 시 장애 요인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전체적인 유통 업계가 고령화 대응으로 씨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식품 업계 만큼은 성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60세 이상의 소비 활동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보다 20여년 앞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도 식품시장 규모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이경희 소장은 “60세 이상 고령자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전체 지출에서 식료품의 비중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겼다”며 “소비 비중 뿐 아니라 금액으로봐도 20·30세대보다 더 많은 돈을 식료품에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의 경우 전체 소매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식품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해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