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090430)의 이니스프리와 에뛰드하우스, 1000원 신화로 유명했던 미샤….

한 때 거리를 주름잡았던 로드샵 화장품들의 기세가 예전만 못한 요즘입니다. 한류를 타고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지만, 낮은 진입장벽에 경쟁까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제 살 깎아 먹기에 돌입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과거 영화를 누렸던 길거리 화장품 회사들은 코로나19 때 입은 타격이 워낙에 큰 편입니다.

실적이 예전만 못하니 아무래도 중저가 로드숍 화장품 회사를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이들도 많이 줄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이니스프리는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가 가진 지분을 다 매도하기도 했지요. 이는 로드샵 화장품의 부진과 맞물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승계에 활용할 정도로 알짜 회사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로드샵 중저가 화장품 업체 네곳 전경. /민영빈 기자

하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받는 회사도 있습니다. 바로 패션 회사 F&F(383220)를 이끄는 김창수 회장이 가진 에프앤코입니다. 에프앤코는 ‘바닐라코’라는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한때 프라이머부터 색조까지 제품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인기를 꽤 끌었던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죠.

최근엔 매장을 예전보다 찾기 어려워졌는데도 여전히 투자자들의 관심사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F&F 기업 승계의 핵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입니다. 김창수 회장은 60대 초반으로 나이가 젊은 편이지만 이미 회사에서 아들 둘에게 경영수업을 시키고 있습니다.

김 회장의 장남인 김승범씨는 F&F 디지털본부 총괄로, 차남인 김태영씨는 프리미엄 스트릿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수프라(SUPRA)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승계 작업도 긴 호흡에서 차근차근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많지요. 증권가에선 그 과정에서 에프앤코가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에프앤코가 김창수 회장과 특수관계자의 지분이 88.96%에 이르는 가족회사기 때문입니다. F&F가 속해있는 지주사 F&F홀딩스(007700)에 포함된 회사가 아니란 뜻입니다. 에프앤코에는 김창수 회장이 대표이사로 등록돼 있고 아내 홍수정씨와 김승범 상무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당초 이 회사는 원래 F&F가 지분 100%를 가졌던 회사입니다. 하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2009년 초 김창수 회장이 지분 전부를 넘겨받았죠. 그랬던 회사가 약 14년이 지난 지금은 기업 승계용 회사로 꼽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픽=손민균

최근 에프앤코는 F&F홀딩스의 지분을 매입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상장사 F&F홀딩스의 지분을 의미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면 옥상옥 구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7월 12일 김창수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F&F홀딩스 주식 41만5000주를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에프앤코에 넘겼습니다. 평균 처분단가는 1주당 1만9480원. 이를 통해 김 회장은 약 80억원 가량의 현금을 확보했습니다. 에프앤코의 F&F홀딩스 지분율은 종전 2.22%에서 3.26%로 올랐지요.

지난 4월에도 김창수 회장은 F&F홀딩스 지분 86만3930주를 시간외 매매 방식으로 에프앤코에 매도했습니다. 에프앤코가 F&F홀딩스 주주 명단에 처음으로 이름 올린 시기입니다.

당시에도 김 회장은 F&F홀딩스에 대한 지배력 변화 없이 2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었지요. 당시 평균 처분 단가는 지난 7월보다는 조금 높은 주당 2만3150원이었습니다.

사실 기업들의 가업승계 과정에서 비상장 가족회사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하림(136480)의 경우 장남 김준영씨의 개인회사인 올품이 그랬습니다.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김준영→올품→하림지주를 보유하는 식으로 지배구조를 바꿔나갔습니다.

LF(093050)의 경우 구본걸 회장의 장남 구성모씨가 고려디앤엘을 통해 LF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래픽=손민균

일부에서는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 신화를 쓰는 김창수 회장도 기업 승계에선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늘 다른 방식으로, 남들보다 반 박자 빠른 접근으로 성공을 만들어왔던 김 회장도 기업 승계는 가장 보편적이고 안정적인 방법으로 나섰다는 뜻입니다.

투자자들의 우려도 나옵니다. 이로 인해 F&F나 F&F홀딩스의 주가가 의도적으로 눌리는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주가 관리 활동(IR)을 소홀히 하는 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사업도 잘하고 주가도 올리고 기업승계도 잘하기란 사실 쉽지 않은 길입니다. 어차피 매수할 기업의 주식이라면 싸게, 쌀 때 매입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니까요.

하지만 김 회장만큼은 그간 보여줬던 혁신이나 성공 스토리에 누가 되지 않는 행보를 보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일 바람직한 건 김 회장의 두 아들들이 F&F의 후광에서 벗어나 새 분야에서 기업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경영수업을 다 마친 이후의 모습이 우리가 모두가 아는 승계 기업의 모습이 아니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