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판촉 뒤에 초라한 성적표만 남았다.

유명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이 간판 제품 할인 행사를 매달 이어가면서 매출 규모를 불리고 있다. 반값 수준으로 할인하는 행사에 소비자들은 열광적인 성원을 보였다.

그러나 대규모 할인 행사가 이어지면서 영업이익률은 경쟁 업체 3분의 1, 최대 1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당기순익 역시 적자로 전환했다.

27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버거킹은 지난 25일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통해 대표 제품 와퍼 세트 기프티콘(선물 쿠폰)을 기존 9100원에서 40% 할인한 5400원에 팔았다.

와퍼는 버거킹을 상징하는 간판 메뉴다. 1957년 버거킹 공동 설립자 제임스 맥라모어가 만든 이후 66년 동안 전 세계 버거킹에서 베스트셀러 메뉴 자리를 지켰다.

이번 와퍼 세트 가격은 10여 년 전 와퍼 단품 가격보다 저렴한 수준이다. 2015년 와퍼 단품 메뉴값이 이번에 선보인 기프티콘과 같은 5400원이었다.

기프티콘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오는 내년 9월 29일까지였다. 기프티콘 유효기간이 1년이 넘어가면 긴 편에 속한다.

평소의 반절 값에 버거킹 대표 제품을 맛볼 수 있다는 소식이 돌자, 소비자들은 기프티콘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100장 넘게 구매하고 이를 인증한 소비자도 여럿 나타났다.

버거킹 관계자들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판매 수량을 1인당 5장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이미 구매 행렬이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수십장 수백 장 단위 대량 구매자 역시 다수 발생했다.

결국 버거킹은 ‘준비한 물량이 모두 팔렸다’며 와퍼 세트에 한해 행사를 조기 종료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동안 버거킹은 대중적인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가운데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에 속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최근 소비자 1800명을 조사한 결과 국내 햄버거 프랜차이즈업체에서 배달비‧주문 수수료를 포함해 1인당 주문한 금액은 평균 1만700원이었다.

와퍼 세트 기존 가격 9100원에 평균 배달비 3000원을 더하면 1만2100원으로 평균치를 웃돈다.

하지만 버거킹은 사람들이 몰리고, 비싼 값을 받으면서도 지난해 다른 경쟁 프랜차이즈에 열세(劣勢)였다.

버거킹을 운영하는 비케이알(BKR)은 지난해 매출액이 이전해보다 11.6% 늘어난 7574억원을 기록했다.

내실없는 성장이었다. 영업이익(79억원)은 이전해 같은 기간보다 68.4% 대폭 줄었다. 영업이익이 3분의 1토막 나면서 자연히 당기순손실 23억원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버거킹 관계자는 “물류비와 원자재 가격 인상,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대외적 변수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식품업계 전문가들은 버거킹이 이번 와퍼 대란(大亂) 같은 과도한 할인 행사를 지난해 연중 내내 펼치면서 영업 이익이 곤두박질쳤다고 평가했다.

버거킹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20여 차례 이상 할인 행사를 펼쳤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박리다매’ 방식이다. 비케이알 판관비는 2021년 약 4027억원에서 2022년 4586억원으로 13.9% 늘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관계자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끝나고 나서 다른 프랜차이즈들도 버거킹과 똑같이 임대료나 물류비, 인건비가 오른 영향을 받았다”며 “버거킹이 할인 행사를 자주 해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할 수 있지만, 버거킹은 지난해 두 차례 가격을 올린 데 이어 올해 3월 또 한 차례 가격을 인상해 이런 부분을 상각해 왔다”고 말했다.

버거킹은 지난 2021년 인수 시장에 나왔다. 당시 예상 매각가는 1조원에 달했다. 그러나 실제 인수 과정에서 시장 평가가 냉담하자, 버거킹을 보유한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는 매각 중단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햄버거 프랜차이즈 업계 최장수 최고경영자(CEO)였던 문영주 비케이알 회장이 불명예 퇴진했다. 문 회장은 지난 10여 년간 한국 버거킹을 이끌었다.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인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버거킹의 수익성이 떨어진 이유는 소비자 충성도가 높은 핵심 상품을 제값 받고 팔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대규모 할인 행사는 인지도가 낮은 신생 프랜차이즈에는 일시적으로 실적을 부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버거킹처럼 유명하고 몸집이 큰 프랜차이즈에는 도리어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